트럼프의 방일·방한… ‘안보+무역’ 두 토끼 잡으러 왔다

입력 2017-11-07 08:4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박3일 일본 방문이 마무리됐다.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목적’은 첫 행선지인 일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를 기다렸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핵 등 안보 이슈를 의제 리스트 맨 위에 올려뒀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트럼프는 ‘무역’을 얘기하러 온 터였고, 안보는 그 장사에 매우 좋은 흥정거리였다.

◇ 아베, 무역은 부총리에 맡기려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어느 때보다 굳건한 미·일 동맹관계를 다졌다는 일본 내부 평가가 나왔다. 중국을 견제하고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국과의 공조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에 외교적 성과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도착 직후 요코타 기지에서 연설하며 일본을 “보물 같은 파트너이자 핵심 동맹국”라고 표현했다. 무한한 신뢰를 드러내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일정을 시작했다. 이런 트럼프를 위해 아베 총리는 골프 회동과 두 차례 오찬·만찬을 통해 ‘오모테나시(일본식 극진한 접대)'를 베풀었다.

골프광인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에 있는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을 준비했고, 세계랭킹 4위인 프로골퍼 마쓰야마 히데키 선수를 라운딩에 참여시켰다. 트럼프가 좋아하는 황금색으로 ‘도널드와 신조, 동맹을 더 위대하게’란 문장을 자수로 새긴 모자도 선물했다.

오찬은 긴 순방 일정 중 ‘아시아 요리'에 지칠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배려해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간 햄버거를 준비하며 배려했다. 만찬에선 미슐랭 별을 받은 고급 철판요리 레스토랑 우카이테이에서 와규 스테이크와 이세 새우(일본산 바닷가재) 요리를 마련했다.

이렇게 극진한 환대 속에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북한 등 안보 문제를 주로 논의하고, 무역을 포함한 통상 문제는 아소 다로 부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주도하는 경제 채널에서 다루려 했다. 아베의 관심사는 북핵이었다. 더 나아가 동북아 힘의 균형에서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압박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다지려고 이 모든 것을 준비했다.


◇ 트럼프 “그런데, 무역이 말이죠…”

부드럽게 진행되던 정상회담 테이블에 갑자기 ‘갈등 이슈’를 올려놓은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6일 아침 주일미국대사관에서 이뤄진 미·일 기업경영자 간담회에서 트럼프는 “미국과 일본의 무역은 공정하지도 개방돼 있지도 않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특히 자동차를 지목하며 “미국은 수년간 막대한 무역 적자를 겪었다. 미국에는 일본산 자동차 수백만대가 판매되고 있지만 일본에서 미국 차 판매는 사실상 없다”고 직설적인 언급을 꺼냈다.

이후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 미·일 무역 불균형 시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본과의 무역은 자유롭지도 호혜적이지도 않다"면서 "공정하고 호혜적 무역관계를 이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분위기’에 상관없이 ‘이익’이 걸린 일에선 양보하지 않는 사업가 기질을 트럼프는 은 “보물 같은 동맹”이라던 일본에서도 그대로 드러냈다. 일본에 이어 찾는 한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보인 태도를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경험했다. 지난 8월 북한 문제로 ‘전화회담’을 할 때였다.


◇ 지난 8월 한·미 정상 '전화회담'의 기억

문재인 대통령은 8월 7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했다. 통화는 56분간 이어졌다. 의례적인 대화를 넘어 실질적인 ‘협의’를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문 대통령이 주로 이야기를 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청했다. 문 대통령이 말한 주제는 북한과 안보였다. 북한 핵과 미사일 대응책을 언급하는 문 대통령의 말을 “좋다” “감사하다”며 듣던 트럼프는 통화 말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화제로 끄집어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두 정상의 통화 내용을 브리핑하며 “오늘 56분 대화는 대부분 문 대통령이 이야기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주로 경청하는, 그런 시간 흐름이었다. 중간 중간에 트럼프 대통령이 ‘좋다’ ‘아주 좋다’ ‘감사하다’ 이런 표현을 6차례 했다. 유익한 대화였음에 틀림없다”고 전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주로 이야기한 것은 안보에 관한 여러 가지 이슈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다 대화 주제가 FTA로 바뀌었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 이야기를 주로 듣던)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주제를 이야기하자고 직접 말하며 FTA 관련 대화를 이끌어갔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화제가 바뀌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의 훌륭하고 위대한 동맹이자 동반자"라며 "미국은 한미동맹을 위해 막대한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막대한 대한(對韓) 무역적자를 시정하고 공정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한미 FTA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개정’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재협상 수준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우리 측 대표인 통상교섭본부장이 최근에 임명된 만큼 앞으로 양측 관계당국 간 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답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국방예산 언급에 대해 "우리는 국방비 지출을 늘려갈 계획이고 내년에 특히 그럴 계획이 있다"면서 "국방예산 대부분이 한국군 자체의 전략 방어력을 높이는 데 사용되겠지만, 국방비 상당 부분이 미국 첨단무기 구입에 쓰일 터여서 대한 무역적자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