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엄마에게 수십 통 전화하는 '분리 불안' 해소방안

입력 2017-11-07 08:02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맞벌이 늘고 있다. 


결혼 가구의 43% 정도가 맞벌이 가정이고 젊은층일수록 경제적 이유로 맞벌이를 선호한다. 하지만 젊은 맞벌이 부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육아문제’이다. 게다가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할 때 부모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초등학교 3학년 L의 부모도 맞벌이이다. L은 순한 편이고 말도 잘 듣는다. 공부와 숙제도 스스로 하니 부모는 걱정 없이 지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L은 직장에 있는 엄마한테 하루에 수십 통씩 전화를 해 일을 하기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엄마가 회식이나 야근이 있어 늦는 날이면 5분에 한번 씩 전화를 하며 불안해 했다. 아빠가 같이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어려서도 걱정을 끼치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이러니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어리광을 피운다고 생각해 야단도 치고 달래 보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증상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L에게 속마음을 물어보니 아이는 "엄마가 걱정이 되요" "혹시 엄마에게 사고라도 났으면 어쩌나 전화하는데 연락이 안 되면 더 초조해져요" " 나쁜 아저씨가 엄마를 납치할까봐 걱정이 되요"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분리불안 증상이었다.

L은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할머니가 키웠다. 할머니와 엄마는 성격이 맞지 않아 갈등이 심했다. 아이를 마땅히 맡길 곳이 없던 엄마는 힘든 것도 참고 지냈었다. 고부 갈등은 부부 갈등으로 이어졌다. 엄마의 무기력하고 우울한 상태는 L이 입학 할 즈음 까지도 이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부부갈등도 나아지고 현재는 딱히 불안의 요소가 없는데 아이가 갑자기 이렇게 하루 종일 전화를 해대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분리 불안'은 정상적인 발달과정에 나타나는 불안 증상이다. 대개 만 3세 전후가 되면 양육자가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대상의 항상성이라는 개념이 형성돼 엄마가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안심하고 지낼 수 있게 되면서 저절로 분리 불안도 사라진다. 하지만 엄마가 물리적으로는 옆에 있더라도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상태 일 때는 엄마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다. 아니 어떤 경우엔 부모와 사별하거나 이혼 등으로 물리적으로 양육자가 부재할 경우보다 더욱 불안정한 애착을 갖게 된다. 이는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사소한 촉발 요인에 의해서 갑자기 분리 불안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손상된 애착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최대한 아이에게 신뢰감를 주어야 한다. 예측 가능한 상태에서 불안은 감소한다. 엄마가 퇴근시간을 약속하고 반드시 지켜주자. 아이가 전화할 때는 엄마가 전화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하기에 방해가 된다면 아이와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을 약속하자. 예를 들면 3시간에 한번 또는 아침, 점심, 저녁 한 번씩 정해 놓은 시간에 전화를 하기 등등. 엄마가 가능한 충분한 시간을 함께 지내 주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L의 어린 시절처럼 물리적으로만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교류를 하면서. 

아이와의 놀이 시간도 가지다 보면 대화도 늘어나고, 아이는 힘든 감정을 말로 표현 할 수 있다. 또 엄마가 없는 동안 아이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엄마의 담요나 엄마의 물건을 쥐어 주고 스스로 불안을 조절하게 연습해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가 자신의 감정 상태을 체크해 보야야 한다. 아이가 불안해 할 때 때 맞벌이 하는 엄마가 흔히 보이는 죄책감, 짜증, 분노, 억울함에 휩싸이면 엄마의 노력이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지 쉽기 때문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