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맛’을 찾아서”… 과자 업계에 분 ‘맛’ 바람

입력 2017-11-05 16:25
사진=오리온, 롯데, 해태

2014년 하반기, 과자 업계는 ‘꿀맛’에 빠졌다. 해태제과의 신작 ‘허니버터칩’이 품귀 현상을 겪을 정도로 인기를 끌자 유사상품이 쏟아졌던 것. 타사에서 출시한 제품들은 대부분 새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과자에 꿀맛만 첨가한 것이었다. 이들은 ‘허니 ○○○’과 같은 이름을 달고 나와 생산량이 달리는 허니버터칩의 빈자리에 빠르게 침투했다. 예전에도 ‘미투(me too)상품’들이 출시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단시간 내에 많은 종류가 한꺼번에 쏟아진 것은 이례적이었다.

◇ 새로운 ‘맛’을 찾아라

이후 과자 업계는 ‘맛’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16년 3월에는 오리온이 ‘바나나 맛’ 초코파이를 출시했다. 1974년 출시 이후 초코파이의 맛에 변화를 시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새 맛을 입힌 초코파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급증했고, 출시되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왼쪽부터) 오리온 초코파이 바나나, 롯데 몽쉘 초코&바나나

그리고 거의 동시에 타사에서도 바나나 맛을 첨가한 제품들이 잇따라 출시되었다. 롯데제과는 몽쉘·카스타드·찰떡파이에, 해태제과는 오예스에 바나나 맛을 첨가했다. 이에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출시된 바나나맛 과자들을 비교·분석하는 글을 쓰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이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오리온 ‘초코파이 바나나’와 롯데 ‘몽쉘 초코&바나나’는 3주 만에 각각 1000만개를 판매했다.

6개월 뒤인 2016년 9월, 이번에는 롯데제과가 새로운 ‘맛’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녹차’였다. 롯데제과는 몽쉘·롯데샌드·갸또·빼빼로·드림카카오 등 주력 제품에 모두 녹차 맛 버전을 선보이며 공격적 판매에 나섰다. 뒤이어 오리온은 ‘말차(녹찻잎을 찐 후 말려 가루로 만든 것) 초코파이’를, 해태제과는 ‘오예스 녹차’를 선보였다. 녹차 맛은 가장 넓은 범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과자류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에서도 녹차 맛을 새로이 입힌 제품들이 등장했고, 빙수 프랜차이즈 ‘설빙’ 역시 2개월 뒤 녹차 빙수를 개시했다.

새로운 ‘맛’을 찾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5개월 뒤인 2017년 4월, 오리온은 봄을 맞아 ‘딸기’ 맛을 입힌 초코파이를 봄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롯데제과와 해태제과 역시 몽쉘과 오예스에 딸기 맛을 첨가했다.

사진=오리온


◇ 차별화 추구 시작

그런데 2017년 하반기부터는 업체들이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서로가 비슷한 맛을 첨가한 반면, 최근에는 업체들마다 자신들만의 ‘맛’을 정해 ‘자기복제’만을 하기 시작했다. 딸기맛 열풍이 휩쓴 지 3개월이 지난 7월, 롯데제과는 여름을 맞아 ‘멜론’ 맛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녹차 때와 마찬가지로 각종 제품에 멜론 맛을 접목시켰다. 8월에는 해태가 ‘블러드 오렌지’ 맛 오예스를 선보였다. 이렇게 상반기에는 딸기 맛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각종 과일 맛 과자들이 업체마다 종류를 달리해 출시되었다.

10월에는 롯데와 오리온이 동시에 새로운 맛을 출시했다. 롯데는 ‘피넛버터’ 맛 칙촉과 마가렛트를, 오리온은 기존 제품에 초콜릿 칩을 첨가한 ‘초코칩 초코파이’를 선보였다. 오리온 측은 “기존에는 지속적으로 ‘맛’을 개발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식감’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개발했다”고 밝혔다.

◇ 한정판 ‘맛’의 매출액은?

국내 제과업계에서 처음으로 '계절 한정판'으로 선보였던 제품인 오리온의 ‘초코파이 정(情) 딸기’는 2017년 봄 출시 한 달 만에 낱개 기준 누적판매량 1100만 개를 달성했다. 매출액으로는 32억 원에 달한다. 해태 ‘허니버터칩’이 2014년 출시 3개월 만에 매출 50억 원을 달성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한정판 과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새로운 맛을 냈을 때만큼 뜨거웠다.

◇ “새로운 시도” “상술”... 엇갈리는 소비자 반응

한편 이렇듯 계속되는 업체들의 ‘맛’ 찾기에 소비자들은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꼽는 가장 큰 장점은 “계속해서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학생 이모(21)씨는 “원래 좋아하던 과자들에 새로운 맛이 더해져 나오니 신선한 느낌이고, 맛도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직장인 우모(23)씨는 “상품 개발비는 아끼고 ‘한정판’이라는 말만 붙여 고수익을 노리는 상술 같아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A제과업체 관계자는 “소비자가 선택을 해 주어야 그 인기가 지속될 수 있다”며 한정판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새로운 선택지”라고 말했다. 또한 “새로운 제품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에 시도된 컨셉”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오히려 2~3개월만 판매하는 한정판 제품 개발에도 신제품 개발과 동일한 양의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한다”고 전했다.

롯데제과의 '녹차' 맛 한정판 과자들

◇ 쏟아지는 ‘미투제품’, 법적 문제는 없을까?

이처럼 업계들이 새로운 ‘맛’을 찾아 출시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까지 과자 생산 추이를 보면, 모든 업체가 비슷한 맛의 제품을 비슷한 시기에 출시했음을 알 수 있다. 서로가 ‘베끼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투(me too)제품은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것일까.

녹차와 딸기 등 보편적인 ‘맛’은 독창적인 창작물로 인정받기 힘든 요소이기 때문에 법으로 보호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업체들은 보다 적극적인 보호에 나섰다. 과거 브랜드명 선점을 위한 상표권 등록만 서둘렀다면, 최근에는 특허권 범위를 제조법·형태·포장까지 확대하며 강한 유사제품 차단 의지를 보였다. 10월 29일 오리온은 얇은 칩을 4겹 겹쳐 만들어 인기를 끈 신제품 과자 ‘꼬북칩’의 모양을 입체상표로 출원했다. 생산설비에 대해서도 특허 출원을 진행 중이다.

특허법은 발명을 보호·장려하고 그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과자와 같은 음식 역시 산업상 이용가능성, 그리고 신규성과 진보성이 인정되면 ‘물질 발명’으로 특허법 아래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입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지금까지 특허 등록된 수는 많지 않다. 또한 특허등록을 받기 위해선 배합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업체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비법을 유출하는 위험을 안게 된다. 또한 소송 역시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절차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미투제품이 물밀 듯 출시되면서 업체들은 이제 각자의 제품을 보호하기에 나섰다.

이소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