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면 검정고시?… 자사·국제·외고 ‘응시 리스크’ 커졌다

입력 2017-11-02 14:00
국민일보 그래픽

내년 고등학교 입시부터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 응시자의 위험부담이 대폭 커졌다. 응시했다가 떨어질 경우 ①비선호 일반고 진학 ②고입 재수 ③검정고시의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학생들이 ‘꺼리는' 학교에 어쩔 수 없이 진학해야 하고, 최악의 경우 진학 가능한 고교가 없어 재수를 하거나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된다.

자사고·국제고·외고에 진학하려는 수요를 줄여 일반고 전환을 유도하려는 문재인정부의 첫 고교서열완화 조치가 2일 발표됐다. 고교 입시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 자사·국제·외고 ‘우선선발권’ 박탈

교육부는 자사고 등을 전기 모집에서 후기 모집으로 전환해 '우선선발권'을 박탈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40일간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확정되며,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교 입시를 치르는 2019학년도부터 적용키로 했다.

자사고 등은 내년부터 일반고처럼 후기모집 고교로 전환된다. 일반고와 같은 시기에 학생을 뽑는 것이다. 올해까지 전기모집 고교에 속했던 자사고 등은 일반고에 앞서 성적우수자를 선점할 수 있었다. 이를 우선선발권이라 부른다. 자사고 등은 우선선발권으로 성적우수자를 뽑은 뒤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활용해 입시기관처럼 운영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사고 등에 지원한 인원은 불합격하더라도 일반고 지원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후기모집에 응해 왔다. 하지만 내년부터 자사고 등에 지원했다가 불합격한 인원은 일반고 배정 때 불이익을 받는다.

자사고 등에서 떨어진 수험생은 일반고로 방향을 틀지, 미달된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추가모집에 응할지 택해야 한다. 일반고 진학을 고른다면 처음부터 자사고 외고 국제고에 지원하지 않고 일반고를 택했던 학생들이 배정되고 남은 학교에 가야 한다. 통학 거리가 길거나 비선호 학교로 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고로 방향을 틀지 않고 자사고 등의 추가모집에 응했을 경우 재차 떨어진다면 추가모집하는 다른 미달 학교들을 전전하다가 고입 재수를 하거나 검정고시를 보게 될 수도 있다.

◇ 위험부담 감수할 응시자, 얼마나 될까

서울 소재 자사고 등은 1단계 추첨과 2단계 면접, 서울 이외 지역은 내신성적과 면접을 거쳐 뽑는 기존 선발방식은 그대로 유지했다. 자사고 등을 겨냥해 수험 준비를 해온 학생들에게 크게 달라지는 전형요소는 없다. 하지만 불합격할 경우 입게 될 불이익이 너무 커진 터라 지원을 포기하는 학생이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가 자사고 국제고 외고의 우선선발권을 박탈한 것은 “합격할 확신이 없으면 지원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동안 정부의 자사고·국제고·외고 폐지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이 학교들의 입시 경쟁률은 이미 크게 낮아졌다. 지난달 원서접수를 마감한 자사고들은 지원자가 작년보다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전국단위 자사고(북일고 상산고 현대청운고)의 평균 입학 경쟁률(정원 내 기준)은 지난해 2.42대 1에서 올해 2.02대 1로 하락했다. 학령인구가 가파르게 줄어드는 인구절벽 상황에 정부 방침이 더해져 나타난 현상이다.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 인기가 많았던 전주 상산고도 경쟁률 하락을 면치 못했다. 지난달 20일 원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올해 정원 내 모집정원 360명(남자 240명, 여자 120명) 가운데 747명(남자 417명, 여자 330명)이 지원해 작년 2.77대 1에서 올해 2.08대 1까지 낮아졌다. 이 학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이 중심인 정시 합격자만 비교하면, 올해 서울대 합격자를 총 45명을 배출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경쟁률 하락은 자사고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현대청운고도 정원 내 모집정원 180명에 371명이 지원해 2.06대 1의 경쟁률로 전년도 2.50대 1보다 줄었다. 북일고 역시 정원 내 모집정원 360명에 701명이 지원해 1.9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2.04대 1)보다 소폭 하락한 수치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실제로 과거엔 자녀가 자사고·외고에서 펼쳐지는 경쟁에서 버텨낼 수 있을지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면, 요즘엔 지금 상황에서 자사고·외고에 진학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문의가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추세는 자사고 우선선발권이 박탈되는 내년이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불안감’에 자사고 진학을 포기했다면, 내년에는 그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과학고 영재고는 손대지 않고 자사고 등의 선발방식도 그대로여서 한계는 있지만 고교서열화 개선의 첫발을 뗐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오세목 자사고연합회장(중동고 교장)은 “자사고 의견은 단 한 번도 듣지 않고 내놓은 불통 정책”이라며 “자사고 선택했다 떨어지면 비선호 학교에 강제로 학생을 밀어넣겠다는 비교육적인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