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나 간호사 등 20~30대 전문직·사무직 여성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경우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범인들의 위협에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청과 금융감독원은 1일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보이스피싱 피해주의보를 발령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공공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20~30대 여성들의 피해금액은 올 1분기 69억원에서 올 3분기 83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달에만 20~30대 여성 38명이 1000만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으며 한달간 피해금액은 7억7000만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금감원이 수사기관이나 금감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피해를 분석해보니 20~30대 여성의 피해금액은 175억원으로 같은 연령대 남성들의 피해금액(19억원)보다 9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왜 20~30대 전문직·사무직 여성이 표적인가
보이스피싱 범인들은 왜 20~30대 여성들을 표적으로 삼을까. 우선 이들이 사회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경찰이나 검찰,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범인들은 ‘본인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으니 협조하지 않으면 본인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식으로 위협하는 경우가 많다. 사기 피해를 입은 경험이 많지 않은 20~30대 여성들이 이런 식의 고압적인 태도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전문직·사무직 여성들은 ‘계좌 안전조치’ 등 사기범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를 구사할 경우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도 있다고 당국은 보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진출이 빠르다는 점도 사기범들이 여성을 표적으로 삼는 이유로 꼽힌다. 결혼자금 마련 차원에서 목돈을 모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국은 사기범들이 ‘범죄사건에 연루됐다’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며 위협할 경우 여성들이 심리적 압박을 받아 주변에 도움을 구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사건에 몰입하는 경향도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20대 여성 기간제 교사인 A씨도 이런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검찰 직원을 사칭한 범인은 A씨의 개인정보를 미리 파악한 뒤 전화를 걸어 “불법자금사건에 연루됐으니 오늘 조사를 받지 않으면 구치소에 수감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가짜 검찰청 공문을 휴대전화로 보낸 뒤 A씨 계좌에 있는 돈이 불법자금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현금으로 인출한 뒤 금감원 직원에게 보내라고 했다.
범인은 “은행에서 고액을 인출하면 보이스피싱 의심을 받을 수 있다”며 “‘신혼여행 때문에 달러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인출하라”고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A씨는 자신의 계좌에서 2400만원을 달러로 환전해 사기범에게 전달했다.
◇치밀하고 대담해지는 보이스피싱 수법
최근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사기범들의 수법도 그에 대응해 대담하고 치밀해지고 있다. A씨 사례처럼 범인들은 은행 창구에서 고액을 인출받는 요령까지 설명한다. 돈을 달러화 등으로 환전하고 은행 직원이 인출 목적을 물으면 유학자금이나 해외여행용이라고 대답하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사기범들은 피해자들이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점을 교묘히 활용하기도 한다. 위조된 공문서나 신분증을 보내 피해자들을 안심시키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처음에는 의심하다가도 속아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돈을 건네받는 장소를 검찰청이나 금감원 인근으로 정하는 경우도 흔하다.
◇“불이익 받는다”며 현금 독촉하면 100% 보이스피싱
경찰과 금감원은 ①낯선 사람이 경찰이나 검찰, 금감원 직원이라며 전화를 걸어 ②개인정보가 유출돼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고 설명한 뒤 ③‘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로 자금이체나 현금 인출을 독촉하는 경우 100% 보이스피싱이라고 당부했다. 특히 피해자 의심을 덜기 위해 소환장이나 확인서를 제시하는 것은 가짜이기 때문에 절대 속아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또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경우 주변 지인에게 통화내용을 설명해 도움을 받거나 금감원 콜센터(1332)나 112신고를 통해 사실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