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시전쟁은 유치원부터?… '추첨 대란’
가을 단풍이 짙어지면 3~5세 자녀를 둔 부모의 근심도 깊어진다. 10~11월부터 ‘유치원 입학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부모들 사이에서 유치원 추첨은 ‘대란’ ‘전쟁’ ‘혈투’로까지 불리고 있다. 저렴한 학비에 신뢰도도 높은 국·공립 유치원은 더욱 치열한 경쟁률을 보인다.
영어교육업체 윤선생이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57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자녀 1인당 평균 3.2개 유치원에 원서를 냈고 69.8%는 자녀를 유치원에 보내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답했다. 힘든 이유 1위에는 유치원 추첨일이 중복돼 가족과 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꼽혔다.
기존의 유치원 입학 방식은 학부모가 직접 유치원에 방문해 입학원서를 수기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추첨일에는 대강당에 모여 추첨 장면을 지켜보며 당첨 여부를 확인한다. 심한 경우 100대 1에 가까운 높은 경쟁률을 보이기도 해 추첨 장소는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 접수·추첨, 온라인서 한 방에··· ‘처음학교로’
2016년 서울, 충북, 세종에서 시범운영하던 온라인 유치원입학관리시스템 '처음학교로(www.go-firstschool.go.kr)’가 1일 오전 9시부터 전국으로 확대 운영된다. 17개 시·도의 모든 국·공립 유치원이 참여하고, 사립 유치원도 희망하는 경우 이 시스템에 등록할 수 있다.
처음학교로는 자녀를 유치원에 보내려는 보호자가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검색해 입학신청을 하고, 유치원은 공정하게 선발된 결과를 알려주도록 고안됐다. 학부모 불편 해소와 교원 업무 절감을 시도한 입학지원 시스템이다.
처음학교로란 명칭은 공모전을 통해 선정됐다. 아이들의 생애 첫 학교로서 공교육 체계에 들어서는 통로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학교' 위상에 걸맞게 유치원의 책무를 강화하고 처음 학부모가 되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뜻에서 지어졌다.
처음학교로는 ‘유치원 알리미’ 시스템과 연동돼 사이트 내에서 교육과정, 교직원 수, 학급 수, 원비, 유치원 평가 등 전반적인 유치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처음학교로에 등록하지 않은 사립 유치원은 ‘유치원 알리미’를 통해서만 확인 가능).
우선모집은 11월 6일부터 8일까지 입학원서를 접수하고, 일반모집은 우선모집 전형이 끝난 후인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원서를 받는다. 우선모집 지원 때 ‘일반모집 자동접수’를 체크하면 우선모집에서 탈락할 경우 자동으로 일반모집에 지원되도록 했다. *우선모집: 특수교육 대상자(100%), 법정 저소득층 가정 자녀(100%), 국가보훈 대상자(3%이상 유치원 재량)
▷ 예비 학부모들은 처음학교로 온라인 사이트에서 공통원서를 작성해 시·도 구분 없이 3곳까지 유치원을 선택·지원할 수 있다(단, 일반모집은 세종시교육청 산하 유치원 제외).
▷ 선발/탈락 결과는 온라인으로 확인하고, 선발된 유치원 중 한 곳에만 등록한다. 등록한 유치원 외에 두 곳은 자동 포기된다.
▷ 일반모집의 경우 탈락시 대기번호를 받는다. 대기번호는 2월 28일까지 유효하다.
접수시 유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1·2·3 지망별 각각 '저장'을 눌러야 한다.1·2·3 지망 번호는 희망순위와 무관하고 세 곳에 지원한다는 의미다. 접수결과가 접수증으로 출력된 상태여야 접수가 완료된다. 우선모집에서 등록이 완료된 원아는 일반모집에서 제외된다. 추가모집 유치원은 유치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선모집의 경우 '13일 추첨·14일 발표', 일반모집은 '29일 추첨·30일 발표'(인천의 경우 29일 저녁 7시 발표) 예정이지만 상황에 따라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교육청이 꼽는 처음학교로의 가장 큰 기대효과는 희망 유치원을 매번 방문해야 하는 학부모의 수고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접수, 추첨 등을 온라인으로 진행함에 따라 유치원 교사의 업무가 경감돼 원아 교육에 더 신경 쓸 수 있다. 온라인 자동추첨 방식이어서 추첨 선발과 대기자 명단의 투명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 ‘처음학교로’ 학부모 궁금증 Q&A
지난 24일 인천 여성가족재단에서 열린 ‘2017 유치원 학부모 연수’에 200여명의 학부모가 참석했다. ‘처음학교로’에 대해 한향숙 원감이 설명하고 홍미란 장학사가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질의응답을 시작하자마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Q. 증빙서류는 어떻게 제출하는가?
A. 증빙서류는 유치원 대표 메일로 보내거나 사이트에 업로드하면 된다.(유치원마다 다를 수 있다)
Q. 문자로 선발/탈락을 알려주는가?
A. 문자메시지는 전송되지만 선발 결과가 아닌 “확인 부탁드립니다” 형식으로 전달된다.
Q 접수현황에 경쟁률 표시가 되는가?
A. 공개 되지 않는다.
Q. 다문화·다자녀는 우선모집에 접수해야 하나, 일반모집에 해야 하나?
A. 특수교육대상자, 법정저소득층 가정 자녀 외 나머지 조건별 우선모집은 유치원 여건을 반영해 원장이 결정한다. 각 유치원 모집요강을 확인해야 한다.
Q. 우선선발은 대기자가 없는가?
A. 없다. ‘일반모집 자동접수’를 체크했다면 탈락시 자동으로 일반선발로 넘어간다.
Q. 이번에 사립 유치원도 대부분 등록했나?
A. 공립유치원 전체와 희망하는 사립 유치원만 등록되어 있다. 인천에서는 지금까지 남부 지역에서 1곳이 신청했다. ‘처음학교로’에 참여하지 않는 유치원은 지원 기회 3회에 포함되지 않으며, 기존 방식대로 현장접수, 현장추첨으로 진행할 것이다.
Q. 대기자 선발시 문자 알림을 주는가?
A. 주지 않는다. 수시로 체크하기를 권고한다. 하지만 아마 유치원에서 전화 연락이 갈 것이다. 대기번호는 2월 28일까지 유효하다.
Q. 3월 이후 결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는가?
A. 3월 이후 결원은 유치원 방침에 따른다. (유치원이 대기번호 그대로 가져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 시스템상에서는 2월28일 이후 일괄 삭제된다.
◇ 온라인 추첨, 정말 투명할까?
신미경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장은 추첨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해 “유치원에서 선택한 선발기준 번호와 유아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16자리 난수가 발생되는데, 이런 단계를 몇 차례 거친 후에 무작위 함수를 통해서 선발 명단을 확정한다"며 "전문가 검증을 거친 터라 추첨이 충분히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
홍미란 장학사 역시 온라인 추첨방식 원리인 난수를 설명하며 추첨비리를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못박았다. 이어 “예전에는 허수 과열 경쟁이 심했다. 6~7곳에 지원하고 한 곳에 붙을 경우 나머지 모두가 취소되는데, 이러한 연쇄효과로 학부모와 유치원 모두 불편을 겪었다. 3곳으로 줄임으로써 학부모들이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해 허수를 줄이고, 온라인 접수/추첨을 통해 학부모와 유치원의 수고를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대체로 긍정적인 처음학교로··· 개선할 부분은?
설명회에 참여한 학부모들은 대체로 ‘처음학교로’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세 살 터울의 세 아이를 기르는 한 다자녀 학부모(30대)는 설명회가 끝난 후 우선모집에서 탈락한 아이들이 대기번호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우선선발에 탈락한 아이들 역시 (일반모집처럼) 대기번호를 부여받아 일반선발에 비해 우선 순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선발 탈락시 바로 일반선발로 넘어가 일반 지원 아이들과 똑같이 경쟁한다는 게 불합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는 질의응답 시간에 지원 시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그는 “날짜가 거꾸로 됐다. 사립유치원은 이미 10월 중에 입학원서를 접수받기 시작했다. (나는) 국·공립 지원이 끝나고 사립유치원을 지원하려 했는데, 국·공립 지원은 11월부터 시작해 길면 2월 말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이후에 다 탈락한 후 사립을 지원하려 할 때는 이미 이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은 학생들로 가득 차 지원이 힘들 것 같다. 내년엔 이를 참고해 일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홍정란 장학사는 “사립유치원에 유아모집을 11~12월로 하기를 권고하고는 있다. 하지만 10월에 하는 유치원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학교로의 내년 지원 시기 조정 문제는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반쪽 서비스?… 사립유치원 상당수 불참
전국을 대상으로 운영이 확대되지만 반쪽짜리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국 유치원생의 75%가 다니는 사립유치원이 대부분 불참할 태세여서 그렇다.
2016년에 ‘처음학교로’를 시범운영한 서울 지역에서는 지난해 사립유치원 677개 중 17개(2.5%)만이 참여했다. 올해 참여 유치원 수는 1일 개통을 해봐야 알 수 있다. 인천 지역 역시 24일 설명회 당시 사립유치원 중 1곳만 등록을 완료했다. 경상남도에선 사립유치원 268곳 중 2곳만 참여 의사를 밝혔다.
사립유치원들이 ‘처음학교로’ 시스템에 불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치원 서열화’를 우려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립유치원이 국공립보다 적은 지원을 받는 가운데 입학에서부터 교육비가 저렴한 국공립유치원과 경쟁할 경우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경쟁률 노출로 인해 ‘유치원 서열화’를 조장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와 함께 일률적인 모집·선발 시기와 절차·방법은 사립유치원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학부모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신경 써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민다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