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31일 오전 10시 홈페이지를 통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등과 관련한 한·중 협의 결과문을 발표했다.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한 지 481일 만이다.
한국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차 확인하고,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재천명했다.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 궤도로 회복시키기로 합의했다.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보복성 조치와 양국 정부의 갈등은 일단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한‧미 사드 배치 결정… 中 연예계 ‘한한령(限韓令)’
박근혜정부 시절인 지난해 7월 8일 국방부는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미동맹의 군사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로 주한미군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기로 한·미동맹 차원의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한민구 국방장관 등이 주한미군 사드 배치 방침을 밝힌 적은 있지만 양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공식 발표한 것은 처음이었다.
‘설마’했던 중국의 사드 보복은 연예계에서 먼저 감지됐다. 한국 배우들이 중국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하차하거나, 출연 방송이 중지되는 사례가 빠르게 늘었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한류스타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에서 동시 방영되기로 했던 이영애, 전지현의 차기작은 현지 심의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중국 네티즌 사이에선 한국 연예인 출연 제한 명단이 만들어졌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중국 당국의 암묵적인 ‘한한령’은 관광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저가 여행 단속을 이유로 지방정부를 통해 일부 지역 여행사에 한국행 여행객 수를 20% 줄이라는 구두 지침을 내린 것이다. 중국 민항국은 올해 1월부터 한국행 부정기 전세기 운항을 전격 불허했다.
사드 부지 제공한 롯데의 수난
롯데는 그야말로 ‘사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2월 28일 국방부는 롯데와 사드 부지 교환계약을 체결했다. 국방부가 148만㎡ 규모의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받는 대신 이 가치에 해당하는 남양주 군(軍)용지 6만7000㎡를 롯데 측에 넘기는 내용이었다.
롯데가 부지 제공을 승인했다고 알려지자 중국 관영 언론은 일제히 롯데를 비난했다. 관영 환구시보(環求時報)는 ‘롯데와 한국을 벌하는 것이 중국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설에서 “롯데그룹이 중국 시장에서 발전하는 것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에서 ‘롯데 불매’ ‘사드 반대’ 시위 사진이 확산되는 등 일반인의 반감도 거셌다.
부지 교환계약 체결 직후 중국의 대형 온라인쇼핑몰 중 하나인 장둥을 비롯해 ‘와이마이’로 불리는 각종 배달 서비스에서 롯데마트 항목이 사라졌다. 롯데 그룹 중국 홈페이지는 외부 해킹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롯데면세점 등 롯데 계열사 인터넷 홈페이지도 중국발 디도스 공격을 받았고, 롯데마트 홈페이지는 두 달여간 문을 닫았다.
현지 롯데마트는 중국 당국의 불시 단속으로 줄줄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99곳 중 87곳이 영업을 중단했다. 나머지 점포도 사실상 휴점 상태에 들어갔다. 롯데마트는 7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며 버티다 결국 6개월 만에 중국 내 매장 전체를 매각·철수하기로 했다.
‘한국 관광 전면 금지’ 사드 보복 본격화
중국의 경제 제재는 점차 확대됐다. 중국 당국은 ‘소비자의 날’인 3월 15일을 기점으로 자국민들의 한국 관광을 사실상 전면 금지했다. 중국의 각급 성 국가여유국이 주요 여행사들에 공지한 7대 지침에는 △단체와 개인(자유) 한국 관광상품 판매금지 △롯데 관련 상품 판매금지 △온라인 판매 한국 관광상품 판매 종료 표시 △크루즈선 한국 경유 금지 등의 항목과 이 지침을 어길 경우 엄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정 국가를 겨냥한 중국 당국의 관광 금지 조처는 2011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당시 중국이 일본 관광 상품 판매를 중단시킨 것과 비슷하다. 당시 중국 여행사들은 1년 가까이 일본 관광 상품을 팔지 않았다.
정부가 이렇다 할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은 뚝 끊겼다. 관광공사에 따르면 3월 중국 정부의 한국여행상품 판매 금지 조치 이후 지난 7월말까지 유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4% 줄었다.
관광·유통업계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국면세점협회가 집계한 지난 9월 면세점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는 약 130만명까지 감소(23.9% 하락)했다. 제주도의 경우 지난 3월 중순부터 지난달 말까지 제주를 방문한 유커는 65만여명으로, 전년 동기간(239만여명) 대비 70% 이상 감소했다.
현대경제연구소는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간 유커(약 333만명)들의 한국 관광 포기로 인한 직접손실액은 약 7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연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18조원에 이른다.
中 새 지도부 출범… ‘한·중 관계 청신호’
1년 넘게 지속된 사드 갈등은 중국의 새 지도부 출범을 계기로 해빙기를 맞았다. 공산당의 제19차 당대회를 앞둔 지난 13일 양국 간 56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이 성사됐다. 당대회 폐막일인 24일 한·중 국방장관 회담이 2년 만에 열리는 등 사드 배치 이후 사실상 단절 상태였던 한·중 관계에 변화가 감지됐다.
지난 26일에는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에 한국 단체관광 상품이 등장했다. 중국 저가항공인 길상항공은 상하이~제주 노선을 올 연말부터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사드 보복이 완화된다는 기대감 속에서 외교부는 31일 오전 홈페이지에 한·중 간 사드 문제와 관련한 협의결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중국 정부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간 협의 결과'라는 제목의 문서에서 양측은 한·중 관계를 매우 중시하며, 양측 간 공동문서들의 정신에 따라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발전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중국 외교부도 이날 “한·중 양국이 각 영역에서의 협력을 정상궤도로 돌리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