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이 지난해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를 돈세탁 및 세금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트럼프 캠프에서 외교정책 보좌관을 지낸 조지 파파도풀로스, 캠프 참모이자 매너포트의 동업자인 릭 게이츠도 함께 기소됐다.
매너포트와 게이츠는 유죄를 인정한 반면, 파파도풀로스는 혐의를 부인하고있다. 매너포트와 게이츠의 혐의는 트럼프 대통령과 직결되진 않지만, 범행 배경과 행적 등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매너포트, 1800만달러 돈세탁 혐의
매너포트와 게이츠는 30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에 출석해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법정에 선 두 사람은 데버러 로빈슨 판사가 혐의를 인정하느냐, 혐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안다(I do), 그렇다(yes)"고 답변했다. 25분 만에 심리가 마무리됐다.
법원은 매너포트·게이츠에게 가택연금을 명령했다. 매나포트에게는 1000만 달러, 게이츠에 대해선 500만 달러의 보석금을 지정했다. 뮬러 특검 측은 가택연금 요청 이유로 "혐의의 성격과 사안의 중대성"을 꼽았다. 유죄가 최종 인정되기 전 가택연금을 하지 않을 경우 증거인멸이나 수사 방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두 피고인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는 11월 2일 시작된다. 주심은 워싱턴 DC 연방지법의 에이미 버먼 잭슨 판사로 정해졌다. 피고인들의 유죄가 인정될 경우 매너포트에게는 151개월에서 181개월, 게이츠에게는 121개월에서 151개월의 중형이 선고될 수 있다.
매너포트는 총 1800만 달러(약 202억5000만원)의 돈세탁 혐의를 받고 있다. 해외에서 돈세탁을 한 뒤 그 돈을 미국으로 가져와 사용했다는 것이다. 매너포트는 이 돈을 우크라이나 선거 등을 지원해주는 과정에서 받았지만, 당국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 자신과 가족의 사치품이나 콘도미니엄, 주택 등을 매입하는 데 사용했다. 매너포트가 사들인 사치품에는 벤츠나 레인지로버, 고가의 러그, 예술품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매너포트의 오랜 동업자인 게이츠는 매너포트가 동유럽의 정치인과 사업가들로부터 자금을 받기 위해 키프로스에 세운 회사와 연관된 인물이다.
◇ 기소된 선거참모… 트럼프, 최대 위기
대선 캠페인을 지휘한 최측근 매너포트의 기소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집권 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또한 트럼프 선거본부와 러시아 간의 내통 혐의 등을 조사하고 있는 러시아 게이트의 파문 역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다음 달 3일부터 12일간 한국 중국 일본 등 첫 아시아 순방을 앞둔 시점에 악재가 터져 외교활동에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매너포트는 그동안 트럼프 정부의 첫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마이클 플린과 함께 첫 기소 대상자로 거론돼 왔다. 지난 7월 26일 강제수색영장을 발부받은 특검팀으로부터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집을 압수수색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이미 지난 8월 뮬러 특검이 자신을 기소할 의도가 있다는 걸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뮬러 특검은 지난 27일 대배심에서 용의자 여러 명에 대한 기소 여부를 배심원 판단에 맡긴 결과 우선 매너포트에 대한 기소 판정을 받아냈다.
매너포트는 지난해 6월부터 2개월간 트럼프 캠프의 선대본부장을 맡았지만 그 전부터 러시아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위해 수천만 달러를 받고 로비활동을 해 진작부터 당국의 수사를 받았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2014년 해외정보감시 법원으로부터 감청영장을 발부받아 매너포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왔다고 LA타임스는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외교안보 자문역을 맡았던 마이클 플린은 지난해 12월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신분으로 세르게이 키슬랴크 당시 주미 러시아대사와 은밀히 접촉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 해제를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플린은 이를 부인했다. 플린은 러시아대사를 만난 사실을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조차 숨겼다가 결국 정식 임명장을 받은 지 24일 만에 경질됐다. 미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지내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플린은 2014년 러시아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을 국방부에 신고하지 않는 등 의심받을 만한 행적이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 측근들을 겨냥한 기소가 임박하자 “마녀사냥”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와 결탁한 일이 없다”고 주장한 뒤 “차라리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를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또 “공화당이 역사적인 감세개혁안을 밀어붙이는 시점에 러시아 얘기가 터져나온 게 우연의 일치인가. 그렇지 않다”고 정치적 음모론을 폈다.
하지만 지지율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8%로 취임 이후 가장 낮았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