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수석, 과거 논문서 ‘낙태의 비범죄화’ 주장한 이유

입력 2017-10-31 00:03 수정 2017-10-31 00:03
국민일보 DB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청원에 대해 청와대가 입장을 내놓기로 하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낙태 관련 논문이 주목받고 있다.

조 수석은 서울대 교수 시절인 2013년 9월 학술지인 ‘서울대학교 법학’ 기고 논문에서 ‘낙태의 비범죄화’를 주장했다. 그는 “모자보건법 제정 후 40년이 흐른 지금, 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재생산권과 태아의 생명 사이의 형량은 새로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며 기존 낙태 처벌에 대한 주장들을 논박했다.

“낙태 허용범위를 넓히고 불처벌 상황을 방치하면 생명윤리와 성도덕이 타락할 것이라는 주장은 논증하기 어렵다.”

조 수석은 “낙태를 강력하게 금지하는 남미 국가와 낙태를 비범죄화한 서구 국가 중 후자에서 인명이 더 경시되고 성도덕이 더 문란한지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생명윤리와 성도덕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고, 낙태가 생명윤리와 성도덕 저하의 주요 원인인지, 낙태를 엄금하면 이 현상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형법은 생명윤리를 존중․수용해야 하지만, 형법은 평균적 시민이 준수할 수 있는 생명윤리를 요구해야 한다.”

조 수석은 친인척 간의 임신, 강간 등의 임신까지 태아의 생명을 위해 낙태를 처벌해야 한다면 ‘형법의 과잉 도덕화’를 초래한다고 봤다. 또 미성년자의 임신, 비혼 임신, 사실혼 관계에서 임신 후 헤어진 경우, 임신 후 남편의 사망 등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이유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균적 시민이 감당할 수 없는 매우 높은 수준의 생명윤리를 형사제재로 실현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여성이야말로 자신의 몸으로 생명을 만들고 낳고 기르는 주체이다.”

조 수석은 “낙태를 선택하는 경우 여성 자신의 건강도 중대하게 훼손되며 대부분의 여성들은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이 점에서 이미 여성들은 낙태 결정으로 인해 스스로 일정한 처벌과 책임을 지게 된다”고 했다. 또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한 부담이 온전히 여성에게 맡겨지는 현실을 지적하며 “산모와 아기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다 낙태를 선택하고, 그 후에도 고통받는 여성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틀렸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이어 “낙태하는 여성은 성행위를 즐겨놓고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사람, 모성애도 없는 여성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반면 임신에 대해 여성과 똑같은, 또는 더 많은 책임을 지는 남성에 대한 비난은 실종된다”며 “이같은 상황을 무시하고 낙태를 전면 금지하거나 낙태 허용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여성의 프라이버시와 자기결정권 등을 중대하게 제약함은 물론 여성에게 미래의 고난을 강제하는 결과를 만든다”고 밝혔다.

뉴시스

조 수석은 논문에서 낙태 비범죄화를 반영한 모자보건법 개정안 예시도 제시했다. 그는 는 “낙태 감소는 낙태의 범죄화와 형사처벌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시기부터 지속적, 체계적 피임교육, 상담절차의 의무화,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 입양문화의 활성화 등 비형법적 정책을 통하여 가능할 것”이라며 “모자보건법 제정 50주년이 되는 2023년 이내에 필자의 낙태 비범죄화 제안이 국회에서 수용되기를 희망하지만,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비형법적 조치만큼은 우선적으로 입법화되기를 희망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한편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 제안은 30일 현재 23만2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 청원은 지난달 30일에 게시됐다.

청와대는 청원이 올라온 뒤 30일 안에 참여인이 20만명을 넘으면 관련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급 등이 공식 답변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