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홈페이지 등록된 낙태죄 폐지 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서면서 온오프라인에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도 공식 답변을 준비하고 있어 ‘낙태죄 폐지’ 공론화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월 30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 청원’ 코너에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원치 않는 출산은 당사자와 태어나는 아이, 그리고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청원 배경을 설명했다.
한 달이 지난 30일 ‘낙태죄 폐지’ 청원은 23만명이 넘는 이들이 서명에 동참하며 마감됐다. 청와대는 청원 참여자가 20만명이 넘게 되면 부처가 공식 답면을 하기로 한 방침에 따라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참여인이 20만명 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정부가 답을 하지 청와대가 할지는 논의해 봐야 한다. 대통령령이나 청와대 지침에 따라 진행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법률문제이고, 헌법재판소에서 4대4 동수로 합헌 결정이 난 사안인 만큼 답변 준비에 만전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낙태(임신중절)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형법은 ‘부녀(여성)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의사, 한의사, 조산사 등 의료인이 낙태에 관여한 때에는 이보다 무거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낙태죄 폐지’ 청원자는 “현행 형법상 낙태죄는 여성에게만 죄를 묻고 있다”며 “불법 낙태 시술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고 가짜 약 복용 등 위험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고 현실과 괴리된 법의 맹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시술받고 정품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낙태죄 폐지와 유산 유도약 국내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낙태 문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두고 오랜 논쟁을 벌여왔다. 이러한 논란은 2012년 헌법재판소의 판단으로 이어졌다. 그해 낙태를 도운 죄로 처벌받은 조산사가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헌재의 판단은 반반으로 갈렸다. 합헌과 위헌이 4대4로 재판관 6명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해 ‘합헌’으로 결론 났지만 보충의견을 통해 현실과 현행법의 충돌을 일부 인정했다.
낙태법 폐지 찬성 측은 현행법이 다만 매우 제한적으로 낙태를 인정하고 있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자보건법에 따라 ▲유전적 정신장애,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 ▲친족성폭력 ▲산모 건강 우려 등 경우에 낙태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자보건법 제정 시기는 1973년으로, 지난 40여 년간 성문화가 개방되고, 임신과 출산도 자기결정권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추세속에서 지나치게 허용 범위가 협소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미성년자의 임신,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고소를 꺼리는 경우, 계획에 없던 임신 등 법 적용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폐지 반대측은 태아 생명권과 낙태 합법화가 부를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생명 경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이 제대로 보호받기 어려워 질수도 있다. 남성들에게 낙태를 강요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낙태 금지와 낙태 허용 주장은 해외에서도 팽팽하게 엇갈린다.
뉴시스에 따르면 독일은 낙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이 산모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또 카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는 남미 국가 등에서도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3년 한 임산부가 주마다 다른 법 때문에 '원정 낙태'를 떠나는 비용을 주정부 법무장관에게 청구한 ''로(Roe vs. Wade) 사건 이후 낙태가 자유화 됐다.
영국에서는 16세 이하의 청소년은 의사 2인이 동의하면 남성 등 다른 사람 사람의 동의 없이 임신 중절이 가능하게 돼 있다. 네덜란드처럼 여성의 요청에 따라 24주까지 임신중절이 전면 허용되는 국가도 있다고 뉴시스는 전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