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둘째 주 9개 드라마가 동시에 첫방송을 시작했다. 그 중 KBS2 ‘고백부부’와 tvN ‘부암동 복수자들’은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 이제 ‘원작 웹툰’이란 말은 드라마에서 낯설지 않은 말이 됐다.
2005년 다음 ‘만화 속 세상’, 네이버 ‘만화’를 시작으로 성장해온 국내 웹툰시장은 2020년 1조원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기반에는 스마트폰 보급이 큰 몫을 했다. 직관적인 상하 스크롤에다 영상에 비해 데이터가 크게 소모되지 않는 장점을 무기로 출퇴근길 등 생활 틈새에 녹아들었다. 이후 다양한 소재와 형태의 웹툰이 등장하면서 여러 방면의 ‘원소스 멀티유즈’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영상화의 가능성을 보다
2005년 웹툰 태동기를 이끈 대표적 작가는 강풀이다. 당시 조회수 1000만을 기록한 ‘아파트’ ‘바보’를 연달아 영화화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후 2008년 강풀 원작의 세 번째 영화 ‘순정만화’가 예매율 1위를 차지하며 시장에 가능성을 알렸다. 윤태호 작가의 ‘이끼’는 2010년 강우석 감독의 손을 거쳐 스크린에 진출했고 340만 관객을 모았다. 작품 평가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청룡영화제, 대종상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웹툰 영상화의 본격적인 바람을 분 것은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였다. 김수현 주연의 이 영화는 당시 최다 사전예매 관객수를 기록하며 690만명이 관람했다. 이후 2014년 장그래의 인턴생활을 소재로 한 드라마 ‘미생’이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웹툰 영상화의 가능성은 드라마로까지 이어졌다.
케이툰의 ‘냄새를 보는 소녀’를 드라마로 만든 작품은 TNMS 기준 최고 시청률 11.9%를 기록했다. 이를 기점으로 네이버 다음 같은 대규모 포털이 아닌 소규모 플랫폼에서도 하나둘 영상화가 진행됐다.
‘무한동력’ ‘신과함께’의 주호민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웹툰은 댓글과 독자 반응을 통해 확실한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다른 미디어로 이식하기가 더 수월한 듯하다”며 웹툰의 영상화가 활발히 이뤄지는 이유를 꼽았다. 웹툰 원작 영상은 원작의 팬층을 흡수함과 동시에 재미를 보장할 수 있어 흥행에 유리하다. 또 방영이 결정되면 웹툰 원작에도 큰 관심이 쏠려 윈-윈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 영광과 불행 사이
하지만 웹툰 독자들 사이에서는 영상화에 대한 불만이 종종 새어나온다. 하루에도 수십편의 웹툰을 구독하는 김모씨(23)는 “(영상화됐을 때) 본연의 매력을 담아내지 못하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화와 영상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인기 요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또 제작자들이 영상의 흥행 법칙을 끼워넣는 바람에 원작이 가진 고유의 매력이 훼손괴기도 한다.
웹툰 ‘치즈 인더 트랩’은 현실적인 대학생활과 매력적인 캐릭터, 인간 군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촘촘한 짜임새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독자들의 끈질긴 염원 끝에 tvN 드라마로 탄생했다. 하지만 캐스팅부터 시작해 스타일링, 원작과 크게 다른 내용 때문에 온라인이 들끓었다. 심화된 갈등은 원작 독자를 지칭하는 ‘치어머니’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치즈 인더 트랩’과 사사건건 간섭하는 ‘시어머니’를 합성한 말이다.
원작자 순끼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치어머니란 단어는 대체 어디까지 사용되는 걸까요?” “‘치어머니’는 나를 사랑해준 독자들이 염려하는 모습을 비꼬아 만들어진 비하적 단어”라며 원작팬을 비하하는 것에 분노했다.
이어 “제작되는 동안 (제작진이) 제게는 연락 한 통도 없었고 저는 드라마가 어떤 내용으로 제작되는지 알 수 없었다”며 원작과 다른 방향성에 불쾌한 심경을 드러냈다. 제작진은 결국 방송 종영을 한 회 앞두고 “드라마와 원작을 사랑해주신 팬 모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드라마에 참여해준 배우들께 불편함을 드려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의 말을 남겼다.
학교 도서관에 비치될 만큼 인기를 얻은 웹툰 ‘신과 함께’는 지난달 26일 많은 관심속에서 예고편을 공개했다. 주인공 김자홍이 죽은 후의 사후세계를 그린 이야기로 한국적인 세계관에 상상력이 가미됐다는 평을 얻었다. 특히 김자홍은 접대로 인한 술병에 사망하는 회사원으로 등장해 소시민을 대표하며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영상 예고편 속 주인공의 직업은 갑자기 소방관으로 둔갑했다. 이 과정에서 기발한 사고방식과 화려한 언변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갔던 진기한이 사라졌다. 누리꾼은 소방관의 죽음이라는 각색에서 신파극을 뜻하는 ‘씨제이(CJ엔터테인먼트) 감성’이 느껴진다며 혹평을 던졌다. 이어 “세계관만 차용하고 이름을 바꾸지 그랬냐”는 반응도 보였다.
이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신과함께’ 김용화 감독은 “나 역시 원작의 팬으로서 정말 영화로 만들고 싶었지만 상상 속의 방대한 지옥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특수효과에만 1000억 원 이상 들겠더라. 감당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고 말했었다. 주호민 작가 역시 원작과 다를 것이라고 미리 언급했지만, 원작의 매력 요소가 사라질 것이라곤 예상치 못한 터였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최근 몇몇 웹툰 원작 영상물이 논란이 된 이유에 대해 “단순히 ‘원작대로 가지 않아서’를 넘어, 원작의 개성을 넘지 못한 것은 물론 매력적이거나 흥미롭지도 않고 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드라마 ‘운빨 로맨스’는 첫회부터 하락세를 보여 마지막 회까지 시청률이 떨어지는 이례적인 추이를 보였다. 원작은 미신을 맹신하는 점보늬와 자린고비지만 저돌적인 재택후의 아침 드라마 같은 진행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상파 데뷔 과정에서 밀당 연애물은 갑자기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변했다. 많은 언론은 원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인기 스타에만 기댄 제작진의 연출 부족을 패착으로 꼽았다.
KT 경영경제연구소는 웹툰 시장이 1조원 규모로 성장하기 위해선 2차 저작물 판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도 언론 인터뷰에서 “영상물을 접한 이용자는 원작을, 원작을 봤던 이용자는 영상물을 보는 수레바퀴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재만 얻고 원작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의 하위 문화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성 평론가는 급격하게 성장한 웹툰 시장에 대해 “산업적인 측면을 논하는 것 이상으로 작품의 질을 논하는 비평적인 측면, 그리고 창작자들이 겪는 노동적인 측면을 모두 짚어야만 건강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담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