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연구소] 아무도 찾지 않아… 애완동물 세계의 흙수저 '유기 믹스견'

입력 2017-10-30 10:26

비엘이는 개집도 없이 쇠줄에 목이 묶인 채 논 한가운데서 생활하다 2009년 구출됐다. 탈수와 영양실조 증세를 보이고 있었고 목엔 뙤약볕에 뜨거워진 쇠줄로 인한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동물보호단체 케어에 의해 구조된 지 8년이 지났지만 비엘이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산이는 지난 4월 개장수에게 팔려갈 뻔 했다. 한 남성이 산이의 목을 올무로 조인 뒤 트럭에 실으려던 걸 행인이 발견해 직접 돈을 주고 구출했다. 두개골 파열, 방광염, 심장사상충 등의 진단을 받앗던 산이는 현재 완치된 상태로 센터에서 지내고 있다. 

나래는 올 초복에 새끼 4마리(나샘·나빛·나로·나슬)와 함께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농장에서 발견됐다. 똥과 음식물 쓰레기로 뒤덮인 뜬장 속에서 새끼들을 키우던 나래는 동물구조활동가들을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관계자들은 나래가 처음 센터에 왔을 때부터 배변을 가릴 정도로 똑똑한 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케어 관계자들은 비엘이와 산이, 나래를 돌봐 줄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이들 모두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믹스견(혼종견)이기 때문이다.


한 해 버려지는 개가 10만 마리에 이르는 상황에서 믹스견은 더욱 위태로운 처지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19일까지 등록된 자료에 따르면, 올 한해에만 접수된 유기견은 총 5만8448마리이며 그중 50.2%인 2만9354마리가 믹스견이었다. 발견·구조되지 못한 개까지 포함하면 이 수치는 더 늘어난다. 유기견 중 믹스견 비율은 2015년 45.5%, 지난해 47.6%에 이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결과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견 중 믹스견이 차지하는 비율이 6.8%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믹스견이 많이 버려지는 것은 사람들이 신중하게 따져보지 않고 강아지를 입·분양받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강아지의 예쁜 모습만 보고 데려왔다가 몸집이 커지면서 집에서 키우기 어려워져 버려버린다는 것이다. 동물학대방지연합의 한 간사는 “개를 입양하는 건 가족을 새로 만나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키우는 과정에서도 교육, 훈련 등 힘든 일이 많기 때문에 입양할 때도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종견 선호주의’도 믹스견이 많이 버려지는 이유 중 하나다. 동물권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는 “아무렇지 않게 ‘(이 개의) 종이 뭐냐’고 묻는 사회에서 믹스견 견주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신의 개를 창피해하기도 한다”며 “모든 개가 종(種)에 포함될 것이란 사회적 편견이 믹스견의 유기율은 높이고, 이렇게 버려진 믹스견들은 새 주인을 찾기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특정 개의 선호 현상은 유기된 믹스견들의 입양조차도 어렵게 한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한 관계자는 유기견 입양에 대해 “비숑이나 푸들처럼 작고, 희고, 어린 강아지는 입양이 쉬운 편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은 센터에 오래 남아있는다”고 털어놓았다.


동물권단체들은 버려진 믹스견들의 입양을 돕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케어는 2011년부터 ‘믹스독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있다. 심사 기준은 ‘사회성 있는 성격’과 ‘개성 있는 외모’ 등으로 개들의 외모와 혈통을 평가하는 기존의 반려견 콘테스트와는 차별화를 꾀했다. 올해 7월에는 ‘검은 개 프로젝트’도 성황리에 마쳤다. 검은 개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부여한 영화나 소설 등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검은 개들을 기피하는 현상을 ‘블랙 독 신드롬’이라 하는데, 이런 검은 개들의 입양을 돕는 캠페인이다.

해외에서도 믹스견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코스타리카의 한 비영리단체는 “믹스견은 잡종이 아니라 특별한 종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전문가와 함께 믹스견이 가진 특징을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한다. 또 보호소에 살고 있는 믹스견들에게 ‘통통한 꼬리의 도베르나우저’와 같이 각각의 개성을 반영한 이름을 붙여주기도 한다. 미국 애리조나 동물복지 연합 보호소는 견종 표시가 입양자들에게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며 아예 견종 표시를 없앴다. 대신 성격과 성향에 대한 설명으로 바꿔 입양자들이 선택에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껏 믹스견은 ‘잡종’ ‘똥개’ 등으로 불리며 다른 개들에 비해 강한 사회적 편견과 마주해야 했다. 케어의 박 대표는 “믹스견은 순종견에 비해 더 똑똑하고 유전적 결함이 적어 건강한 편”이라며 믹스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승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