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은의 씨네-레마] 참된 인간이란 무엇인가

입력 2017-10-27 15:59
참된 인간이란 무엇인가(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 2017)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이라는 모토 아래 만들어졌던 21세기 복제인간 ‘리플리컨트’와 인간의 능력을 위협하는 이들을 제거하는 ‘블레이드 러너’의 대결은 계속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1) 이후 36년 만에 후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스크린에 올려졌다.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과 ‘컨택트’(Arrival, 2016)로 자신만의 영화세계와 연출력을 인정받은 드니 빌뇌브가 감독을 맡아 영화 팬들의 기대를 받았다.

2049년 캘리포니아, 타이렐사의 유산을 거머쥔 새로운 통치자 월레스는 우주 식민지를 꿈꾸며 인간에게 복종하는 리플리컨트를 만든다. 그중에 ‘K’(라이언 고슬링)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 러너가 된다. 그는 한적한 시골에서 단백질 농사를 하던 리플리컨트 제거 임무를 수행하던 중, 나무 아래 깊이 숨겨진 유골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 유골에서 출산의 흔적을 발견한다. 복제인간의 출산 가능성이 ‘진짜 인간’에게 초래할 혼란을 덮으려 또 다른 추적이 벌어진다. 한편 리플리컨트들은 그들이 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의 시대가 곧 다가올 것이라 한다. 도래할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갖가지 예측과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직업이 바뀌고 삶의 기반이 변할 것이라 한다. 새롭게 적응해야 할 환경에 대해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고 있다. 영화는 디스토피아적(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대화돼 나타나는 어두운 미래상) 전망 속에서 ‘진정한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빌뇌브 감독은 전작의 스타일과 ‘고전영화’의 계승 속에서 답을 찾고 있다.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감독은 전편의 느와르 감성을 유지하지만 SF영화에서 흔히 기대하는 긴장감 있는 액션과 화려한 화면을 없앴다. 대신 느리고 긴 화면과 깊이 있는 이미지로 지극히 사색적이고 시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러시아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 ‘스토커’ ‘희생’ 등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많다. 첫 장면에서 나무와 불타는 집은 ‘희생’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빌뇌브 감독 전작들에서 발견되는 가족과 혈육의 정이 인류애로 확장되는 주제의식은 동일하게 반복된다.

인간은 자기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온전히 볼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만들지 않은 자가 자신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 기독교인에게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은 우리 안의 ‘신의 얼굴’을 찾는 일과 같다. 영화에서 리플리컨트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이유는 인간을 능가하는 막강한 힘과 엄청난 지적 능력 때문이 아니다. 인간을 숙연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흥행엔 실패했지만 오래도록 회고되며 ‘저주받은 걸작’이란 수식어를 얻었던 전편의 백미는 리플리컨트가 죽는 마지막 장면에 있었다. 

스콧 감독은 이 장면을 손바닥의 못자국과 희생, 그리고 성령의 비둘기와 은총의 빛의 이미지로 풀어냈다. 빌뇌브 감독은 그것을 복제인간을 품은 한 그루 나무와 희생으로 불타는 집, 하늘의 선물인 하얀 눈,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감각, 소중한 기억을 나눈 은혜를 베푼 자에 대한 보은으로 그려낸다.

임세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