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정에 멧돼지 16마리 출현…엽사들 '포획 추격전’

입력 2017-10-26 17:17

불암산 주변 멧돼지 20마리 목격 제보까지
주거지·유치원·등산로 등 탐색해 흔적 발견
8시간 추적 끝에 결국 인력 부족으로 철수
“서울시민들 지키는 마음으로 잡으러 다녀”

“‘새발’이 여기 잔뜩 있어. 어제 여기를 떼로 지나갔구만.”

엽총을 든 서울멧돼지출현방지단 소속 10여명의 엽사들이 땅바닥을 샅샅이 살펴보며 멧돼지를 쫓았다. ‘새발’은 엽사들의 은어로 새로 생긴 멧돼지의 발자국 등 흔적을 뜻한다.

전날 새벽 서울 노원구 서울여자대학교 교내에서 멧돼지 떼가 16마리나 목격돼 엽사들은 26일 새벽 5시30분부터 노원구 불암산 일대의 목격자와 새발을 찾아 나섰다.

새벽부터 태릉 뒷편 일대를 뒤졌지만 멧돼지가 지렁이와 굼벵이 등을 찾아 땅을 헤집어 놓은 흔적, 발자국 등만 발견했을 뿐 멧돼지는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오전 10시께 서울 노원구 한국전력공사 인재개발원 인근에서 멧돼지 20마리 가량이 목격됐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윤계주 서울멧돼지출현방지단 총무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멧돼지 떼를 본 게 6마리였다. 20마리는 엄청난 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시간가량 인재개발원 인근 수풀이 우거진 곳을 뒤졌지만 들개들뿐이었다.

아쉬워할 시간도 없이 엽사들은 멧돼지들의 이동경로를 추적해 이들이 불암산 능선을 타고 노원구의 한 주말농장 뒤쪽으로 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멧돼지가 농장에 가끔 내려오는 관계로 고구마를 심을 수 없습니다’라고 쓰인 이 농장 주의사항이 이 곳에서 멧돼지를 포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더 크게 만들었다. 엽사들은 ‘여기서는 반드시 잡겠다’는 각오로 작전에 나섰다.

우선 두 명의 엽사들은 능선의 각각 반대쪽에서 사냥개 5~6마리씩을 데리고 ‘몰이’를 시작한다. 후각이 발달한 개들이 먼저 멧돼지를 발견하고 추격하면 자고 있던 멧돼지들이 깨어나 도망을 간다. ‘몰이꾼’들은 멧돼지들을 산 아래쪽으로 유인한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산 밑에서는 엽사와 사냥개들이 유리하다. 사냥개들은 평지에서는 멧돼지보다 빨리 뛰어가 각각 다리와 몸통을 물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주요 길목에서 대기하고 있던 엽사들이 멧돼지를 쏘아 포획하는 작전이다.

그렇게 몰이가 시작되고 길목을 지키기로 한 엽사들도 자기 위치에서 사주경계를 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갔다. 산 위에서는 “내려가자. 없다!”는 안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 엽사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엽총을 어깨에 걸친 채 산을 내려왔다. 사냥개들도 새벽부터 이어진 수색에 지쳤는지 혀를 내밀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엽사들은 호각을 불어 사냥개들을 불러모으고 차에 태웠다. 각자 차에 엽총을 정리하고 철수하려던 찰나, 지나가던 한 주민이 “내가 멧돼지를 봤다”는 제보를 했다.

이미 떠난 엽사들도 많았지만 남은 4명의 엽사와 6마리의 사냥개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들은 차를 타고 곧바로 중계동 뒤쪽 불암산으로 달렸다.

주민이 제보한 장소는 한 유치원 뒤편이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숲 체험장’에, 시민들을 위한 ‘둘레길’이 마련돼 있는 곳으로 통행이 많은 곳이었다.

한 엽사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새발이 엄청 많네. 여기로 지나간 게 맞아”라고 멧돼지가 근처에 있음을 확신했다. 그러면서도 “여기 주민들도 많이 다니고, 유치원까지 있는 동넨데 아주 위험하겠어”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엽사들이 엽총을 메고 사냥개들을 끌고 둘레길을 돌아다니니 시민들은 “멧돼지가 있다고요? 지금도 있어요?”라고 하는 등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한 엽사는 “멧돼지가 야행성이라 낮에는 돌아다니지 않고 잔다. 또 마주쳐도 사람을 보면 도망간다”면서도 “그래도 멧돼지가 발정기거나 특히 11~12월에는 난폭해질 수 있어서 위험할 수 있다. 가끔 사고도 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몰이를 시작했다. 4명밖에 엽사들이 남지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해보자는 의지는 강했다.

산을 둘러보던 한 엽사가 “지형을 보니 멧돼지들이 가지 않는 암벽을 제외하고, 저 정상쪽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멧돼지가 자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색해보니 산 중턱에는 멧돼지 떼가 산 위로 올라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엽사들은 정상까지 가서 몰이하기에는 인원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결국 철수를 결정했다. 한 엽사는 “그래도 멧돼지들이 시내로 내려오지는 않을 거 같아서 다행”이라며 “혹시 또 멧돼지 목격 제보가 들어오면 그때는 꼭 잡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서울 시내로 멧돼지가 출몰하는 일은 종종 벌어진다. 지난 12일에도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후문 인근에서 멧돼지 3마리가 출몰한 바 있다.

그러나 엽사들에 따르면, 서울은 멧돼지를 포획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서울 시내 산지는 대부분 공원, 사유지, 유적지 등이라 철책이 둘러져 있는 경우가 많아 추격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한다. 멧돼지는 철책 위를 뛰어넘거나 밑으로 지나갈 수 있지만 사람은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멧돼지출현방지단 엽사들은 현장을 떠나며 “우리는 서울 시내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잡으러 다닌다”며 “서울 야산에는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도 많고 포획도 어렵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특별히 멧돼지 흔적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포획할 수 있게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새벽부터 8시간 가량 이어진 멧돼지 사냥은 아쉬움을 남긴 채 종료됐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