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부모의 별거, 아이에게 악 영향

입력 2017-10-26 09:12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부모의 별거나 이혼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아이가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 하더라도 가정의 불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슬픔, 분노,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사고의 자기 중심성 때문에 또한 부모의 갈등이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느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른들의 눈치를 보고 또래 관계를 회피하거나 퇴행하고 때로는 산만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감정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아 어른들이 보기에 감정적으로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경우다.

민지(가명)는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아이다. 공부를 너무 못하니 사고력과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부모가 지능검사를 해달라고 병원을 찾았다. 실제로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 내용이 4학년치고는 미숙했다.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어색해 하고 사소한 일도 허락을 구하며, 지나치리 만큼 공손하고 예의가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부모의 걱정했던 지능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그림을 그려보게 하자 민지는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를 그리고 엄마가 먹이를 물어오기를 기다리는 아기 새를 그렸다. 애정에 대한 간절한 갈망을 담은 그림이었다.

민지의 부모는 민지가 아주 어렸을 때 수개월 동안 별거를 했다. 그동안 민지는 친할머니 댁에 맡겨졌는데, 엉겁결에 아들이 이혼 지경에 이르고 난데없이 손녀를 떠맡게 된 할머니의 눈에 아이가 예쁘게 보일 리 없었다. 민지는 완전히 혼자 내던져졌다.이후 부모가 재결합을 해 다시 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데도 민지는 그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 다시 부모가, 특히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했다. 

이런 식으로 ‘대상’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불안은 부모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불안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흔들리게 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다투거나 분위기가 냉랭해지면 민지는 특히 더 불안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뻔한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을 더 좋게 포장해서 내보였다. 그러니 무언가에 몰입하기 힘들고 집중이 되지 않아 인지적으로 부족한 아이처럼 보였다. 

부모와 이렇게 왜곡된 상호작용을 맺었으니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와의 관계는 모든 대인관계의 원형이다. 엄마처럼 친구가 떠날까 두려워 마음을 열지 않으니 누구와도 진정으로 가까워지기 힘들었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니 친구들에게도 무시당하고 외롭게 지내게 되었다.

민지의 부모는 민지가 지능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확인을 하고 내심 마음이 놓이는 듯 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부모가 어떤 경우에도 버리고 떠나지 않을 거란 신뢰감이 필요했다. 부모의 사랑이 조건부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야 한다. 공부를 못해도, 착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솔직히 자기 모습을 드러내도 부모의 사랑이 변하진 않는 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부부관계에 미숙했던 민지의 부모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열심히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또 부부간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과 대화의 기술도 함께 배워 부모간의 튼튼한 유대감도 보여 주려 노력하고 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