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건네다/윤성택/북레시피
시인 윤성택이 시집을 읽다 자신의 마음을 흔든 시구가 담긴 페이지를 접어두었더란다. 시간이 흐른 뒤 그때 마음을 천천히 돌이켜 적은 글들이 바로 이 책이다. 다정하고 따스한 마음이 느껴진다. 크게 ‘마음에도 길이 있어’ ‘이제 잊지 않으려고요’ ‘사랑도 이별도 열대야입니다’ ‘추억은 추억끼리 모여 삽니다’는 제목 아래 글이 이어진다.
‘마음에도 길이 있어’ 편에 나오는 글 하나.
제목은 ‘살아 있다, 난’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밤이 그토록
낮보다 진합니다. 커피를 마시다 보면
나 또한 누군가의 각성이라는 걸,
음미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녁은 아메리카노를 닮았고
새벽은 에스트레소로 내려집니다.
누군가 쓴 맛이 강해서
나 또한 식은 커피처럼
손 놓고 먼 산만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커피 머금는 그 시간,
아무도 몰랐던 낮이 밤으로 어둑해져
나도 내가 걸립니다. 으스러지는 원두의 낯빛이
오늘의 불면입니다, 깨어 있다면 보세요.
삶은 이토록 타인으로 짙어지는 향기입니다.
향기가 그토록 떠나야 하는 삶의 순간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입술에 댄 그 느낌은 구름의 예감입니다.
진한
먹구름을 따라놓습니다.
그 안이 다 보입니다.
커피를 마시며 일상을 음미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글이다.
책 말미에는 이 에세이에 영감을 준 시집 목록이 있다.
‘살아 있다, 난’에 영감을 준 시가 있는 시집은 이윤택의 ‘나는 차라리 황야이고 싶다’(북인, 2007)이다.
가을을 깊이를 느끼고 싶은 이들, 그 깊이를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이
반가워할 것 같다.
232쪽, 1만3000원.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