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픽하이 “마지막 앨범이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입력 2017-10-24 17:48 수정 2017-10-24 18:14
힙합그룹 에픽하이. 왼쪽부터 미쓰라진 타블로 투컷.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마지막 앨범이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죠. 하지만 오래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예측하지 못한 일로 앨범을 더 이상 낼 기회가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의든 타의든 음악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수 있잖아요. 그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항상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감사함을 느껴요.”(타블로)

데뷔 14주년을 맞은 힙합그룹 ‘에픽하이’(멤버 타블로·미쓰라·투컷)가 3년 만에 정규앨범 9집 ‘위브 돈 섬싱 원더풀(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을 들고 나왔다. 삶과 사랑에서 실패를 겪은 것만으로도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더블 타이틀곡 ‘빈차’ ‘연애소설’을 비롯한 11곡은 공감과 위로를 바탕으로 한다.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멤버 타블로. YG엔터테인먼트 제공

24일 서울 마포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에픽하이 멤버들은 9집 앨범의 인기에도 담담한 모습이었다.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은 전날 공개 이후 앨범차트 7곳 모두에서 1~2위를 석권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다른 수록곡들도 차트 줄 세우기를 하면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와 남미 10개국 앨범차트에서도 정상을 기록했다.

“겸손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기대를 안 했어요. 기대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앨범 나오면 휴대전화를 꺼놓고 최대한 안 보려고 매니저 분에게 전화를 넘기기도 했어요. 그런데 투컷이 계속 중계해주더라고요(웃음).”(타블로) “차트에 신경 쓰지 말고 받아들이자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솔직히 기대는 했어요. 안 할 수가 없죠.”(투컷)

3년 공백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동안 멤버들은 여러 변화를 겪었다. 타블로는 2015년부터 YG엔터테인먼트 산하 ‘하이그라운드’의 대표를 맡다가 최근 사퇴했다. 미쓰라는 2015년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 투컷은 지난해 둘째 딸을 품에 안았다. 그동안 마음에 드는 곡이 쉽게 나오지 않았던 것도 공백이 길어진 이유다.

“3년이라는 말도 안 되는 공백이 있었어요. 오랜만에 만난 예전 댄서 분조차도 진지하게 에픽하이 해체한 거 맞느냐고 묻더라고요. 당황했지만 그런 생각이 말이 될 정도로 방송에 안 나왔어요. 저희가 예전처럼 주목받는 그룹은 아니잖아요. 그동안 해외 페스티벌과 투어 공연을 다녔는데 티가 안 나기도 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타블로)

에픽하이는 앞으로 방송보다 공연에 집중할 계획이다.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앞으로 라이브 공연에 집중하기 위해 이 방송이 첫 방송이자 마지막 방송일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저희가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나오면 과연 누가 좋아하겠어요(웃음).”(타블로) “신인들에게 기회를 더 주고 싶어요.”(투컷)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멤버 투컷. YG엔터테인먼트 제공

9집 앨범의 최대 특징은 음원 순위에 강한 가수들이 피처링에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빈차’의 오혁, ‘연애소설’의 아이유, ‘노땡큐’의 송민호·사이먼 도미닉·더콰이엇, ‘히어 컴 더 리그레츠(Here Come The Regrets)’의 이하이, ‘상실의 순기능’의 수현, ‘개화’ 넬의 김종완, ‘문배동 단골집’의 크러쉬 등. 면면이 화려한 가수들이다.

특히 더블 타이틀곡을 피처링한 아이유와 오혁을 섭외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우선 아이유의 팬이고요. 아이유는 따스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를 지녔어요. 따스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차갑게 전해야 하는 노래여서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타블로) “아이유 콘서트 게스트로 나갔을 때 피처링해주겠다는 대답을 받아 연락했어요.”(투컷)

투컷은 모든 섭외를 맡아 연락을 돌렸다. “오혁은 연락이 힘든 친구 중 하나에요. 문자를 보내면 답장이 올 때까지 일주일 정도 걸려요. 같이 하겠느냐고 문자를 보냈는데 기적적으로 5분 만에 답이 왔어요(웃음). 그날 녹음도 바로 하게 됐어요.”(투컷) “가끔 그런 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특히 양현석 대표님이 연락 올 때요(웃음).”(타블로)

피처링 가수와 함께한 곡 중 ‘노땡큐’의 일부 가사로 인해 여성혐오 논란이 있었다. “진심으로 그런 걸 의도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곡의 전체 맥락을 보다 보니 논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곡은 지극히 주관적 잣대로 무분별하게 판단내리는 세태를 풍자하면서 그 안에서 자아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어요.”(타블로)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멤버 미쓰라.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에픽하이의 앨범은 대체로 인간 내면의 모습을 그린다. 물 위에서 보이는 화려한 백조의 모습이 아닌 물 밑에서 미친 듯 발 굴려대는 절실한 백조의 모습. 마냥 행복해 보이거나 생각 없어 보이기만 한 사람도 꺼풀을 하나 벗겨 내면 보이는 그런 모습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게 조금 더 세상을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권준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