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희귀병 아내가 이혼하자네요"

입력 2017-10-24 14:47 수정 2017-10-24 16:07

결혼하고 얻은 희귀질환을 앓는 아내와 사는 남편의 사연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진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더 이상 짐을 지우기 싫다"며 이혼하자는 아내의 말에 "내 빨래와 밥은 누가 해주냐"며 화를 냈다는 남편.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남편은 몰래 울었습니다. 남편은 지난 1월말  한 커뮤니티에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부모와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연은 지금까지도 여러 커뮤니티를 퍼지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2017년 1월 24일 E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남성의 사연 전문입니다. 이 남성의 아내는 극심한 통증이 지속되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와이프가 이혼하자네요>

결혼 4년차.
애 없음.
울 와이프 crps 환자임.
결혼 후 2년쯤 됐을 때 교통사고로 발병함.
왼쪽 엉덩이를 타고 허벅지, 종아리, 발 전체에 통증을 느낌.
신발은 커녕 양말도 못 신고 그 더웠던 올 여름에 살랑거리는 선풍기 바람에도 아파함.
담요를 덮으면 그 무게에도 아파함.
갑자기 큰 통증이 몰려올 때가 있는데 그 땐 마약성 진통제 먹다가 허용량 넘어서도 가라앉지 않아 들쳐업고 응급실 가기가 수십차례.
내가 잠버릇이 나빠 다리를 칠까봐 와이프는 침대에서 나는 바닥에서 이불깔고 손만 꼭 붙잡고 잠.
요즘엔 그간 치료가 좀 들었는지 집에선 수월하게 생활함. 그래서 그동안 돈벌고 집안일하느라 고생했다고 나한테 집안일은 손도 못대게 함. 도시락도 싸 줌ㅎㅎㅎㅎ 음식 솜씨는 우리 엄마 보다 좋음^^
양가 부모님은 와이프가 좀 아프단 것만 알지 자세한 병명은 모름. 둘 다 원체 연락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고 내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양가 방문을 잘 못함. 게다가 부모님들 조차 바빠서 우리 집에 잘 오시지 못 함.
그런데 우리 부모님이 수도권을 돌아다니시는 일을 하기 때문에 어쩌다 나 없을 때 집에 불쑥 올 때가 있음. 닥달하는 건 아니지만 넌지시 교회 나와라, 애기는 언제쯤 생각이냐 물으실 때가 있나 봄. 차 안에 반쯤 누워 병원 왔다갔다하는 것도 녹초가 되는데 교회 얘길하고 애 얘기를 하니 나도 속이 타들어감. 근데 울 와이프는 빵실빵실 웃으며 "내가 집 안에서는 완전 멀쩡해보이잖아ㅎㅎㅎ" 하고 킬킬댐.
혹시 몰라 심리상담을 받아보기도 했는데 머리가 좋아서 피해가는건지 성격이 낙천적이라서 그런건지 우울증세는 보이지 않았음.
그런데 오늘 저녁 먹고 tv를 보면서 얘길하는데 갑자기 이혼 얘길 꺼냄.
아직 젊고 아이도 없으니 자기한테 엮이지 말고 이혼을 하자고..
장모님 가게 카운터라도 보면서 살겠다고..
아픈 자식 내치겠냐며...
난 그럼 내 빨래는 누가해주고 밥은 누가 해주냐며 말도 안 되는화를 내고 화장실로 들어와 샤워하면서 꺽꺽대고 울고 나왔음...
내가 잘 품어주고 살 수 있는데...

E커뮤니티와 분위기랑도 안 맞는 내용이지만 아는 커뮤니티가 E커뮤니티 밖에 없고..
내 친구도 부모님도 모르는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음...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