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에서 백골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된 5살 아이의 '보호자'였던 A(29)씨가 경찰에서 “목욕 중 아이가 넘어져 머리를 바닥에 부딪혀 사망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가 보육비를 빼돌리기 위해 직장 선배의 5살 아들을 데리고 다니다 아이가 숨지자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목욕 중 사망' 진술은 살인 혐의를 부인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북 칠곡경찰서는 23일 A씨가 “지난해 10월 2일 아이를 모텔로 데려갔는데, 다음날 낮에 목욕탕에서 목욕을 시키다 박군이 두 번 넘어졌다. 한 번은 엉덩방아를 찧었고 다음에는 머리를 바닥에 부딪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4일 늦은 밤이나 5일 새벽에 아이가 숨지자 A씨가 이불로 시신을 싸맨 채 낙동강 산호대교로 가 불로 태운 뒤 사체를 유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가 살인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이같이 진술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돼 타살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살인보다 형량이 높아질 수도 있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및 감금·유기치사 혐의(징역 7년 이상, 무기징역, 사형)를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경찰은 “자백이 없으면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하면 살인보다 형량이 높아 처벌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A씨는 형법상 영리목적 유인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A씨는 지난해 10월 칠곡에서 선배 박모(37)씨에게 “아들을 힘들게 혼자 키우지 말고 보육시설에 맡기자”고 제안해 박씨의 아들을 데리고 갔다가 아이가 숨지자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와 박씨는 지난해 4월부터 알게 됐다. 당시 대부업체에서 수금 업무를 하고 있던 A씨는 이곳에 돈을 빌리러 간 박씨와 처음 만났다. 이후 둘은 그해 8월 말부터 9월 말까지 세차장에서 함께 일을 했다.
그동안 친분을 쌓아온 A씨는 박씨에게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게 힘들지 않느냐. 요즘 보육시설이 잘돼 있으니 맡기는 것이 좋겠다”며 자신에게 아들을 맡기라고 설득했다. A씨는 범행 당시인 지난해 9월쯤 둘째가 태어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가중된 상태였다. 이미 2014년 주식과 사설스포츠 도박으로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박씨는 이혼한 뒤 아들과 둘이 생활하고 있었다. 일을 하느라 아들을 돌볼 시간이 거의 없었던 박씨는 아들을 A씨에게 맡기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씨가 박군을 데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사망했고, A씨는 사체를 낙동강 다리 아래에서 불태워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당시 모텔에서 나올 때 아이의 시신을 이불에 감싼 채였다. 그런 다음 자신의 차에 시신을 싣고 낙동강 산호대교 아래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삽으로 구덩이를 판 뒤 그 안에 이불째로 시신을 넣고 그 위에 주변 나뭇잎을 덮은 뒤 시너를 뿌리고 불로 태웠다.
A씨는 박씨가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면 밥이나 술을 사주며 수차례 핑계를 대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그동안 박씨로부터 월 27만원의 보육비를 받아 챙겼다. A씨는 경찰에 이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진술했다.
A씨가 계속해서 아이를 보여주지 않자 박씨와 아이의 할아버지는 보육비를 끊고 아이를 돌려 보내라고 적극 요구했다. 그럼에도 A씨가 회피하자 박씨는 지난 10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21일 박군의 백골이 발견됐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