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막한 ‘제12회 여성연출가전-리부트(RE:BOOT)’는 여성의 시선으로 담은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무대에 올린다. 2005년 여성 연출가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시작한 이 연극제는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협력네트워크 사업과 대학로문화 활성화 홍보마케팅 사업에 선정됐다. 그러면서 여성 연출가들이 만드는 국내 유일의 연극제로 또 한 번 의미를 인정받았다.
2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1회부터 12회까지 연극제를 지켜 온 여성연출가전 대표 백순원(44·사진)씨를 만나 소회를 들었다.
그동안 연극제를 진행하는 과정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여성이 모인다는 이유만으로도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3회까지만 해도 너무 힘들었어요. 여성이 하는 작품이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페미니즘만으로 보더라고요. 2013년이 원래 9회여야 하는데 한 해 진행을 못했어요. 지원이 부족해 연출가들이 진행하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이듬해 9회를 진행했는데 2팀뿐이었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해보자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지원이 늘었어요.”
여성연출가전 하면 흔히 페미니즘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성으로만 주제를 한정짓지 않았다. “사실 1회에는 ‘식스 섹스(Six Sex)’라는 주제로 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올렸어요. 하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꼭 페미니즘 틀에만 갇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여류 화가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이고 싶다’고 했대요. 똑같은 세상을 여성의 시각으로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 12회의 최대 특징은 참여하는 여성 연출가의 나이와 경력 제한을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늦은 나이에 신진으로 데뷔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과거에는 신진에게 기회를 더 준다는 의미에서 연령대를 봤어요. 하지만 신진이 생물학적인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연출가로 입문한 시기가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어요. 60대인데 연출가로 처음 활동을 시작하면 신진으로 연극제에 참여할 수 있죠.”
시상 제도 도입도 큰 변화다. “사실 누가, 어떤 이유로, 누굴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시상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연출가들의 의욕을 북돋고 작품 활동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올해부터 도입하게 됐어요. 대다수의 연극제와 다르게 연출가에게 초점을 더욱 맞춰 시상제를 진행하려고 해요. 그래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통합했어요. 연출상과 배우상만 있을 예정이에요.”
여성연출가전이 12회까지 올 수 있던 원동력은 그동안 참여한 선배 연출가의 도움이다. “선배와 동료 연출가들이 30여분 돼요. 그동안 연대가 생겼다고 할까요. 그분들이 페이스북 ‘좋아요’도 많이 눌러주시고요. 응원과 지원을 많이 해주세요. 도움이 없었다면 12회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또 하나는 선배 연출가들이 자리를 잡거나 해외에서 수상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계세요. 신진들이 그런 모습에 용기를 얻는 거죠.”
백 연출가는 세계적인 여성연출가전을 꿈꾸고 있다. “여성연출가전을 보다 글로벌하게 만들고 싶어요. 3~4년 후에는 동남아를 비롯해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여성 연출가들을 초빙해 같이 작업하고 싶어요. 우리 연출가들이 반대로 해외 진출해 작업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도 하고요. 다음에는 세계 여성연출가전을 열 계획도 있습니다. 12주년을 맞이해 올해 주제처럼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여성연출가전은 신진들이 실력을 한바탕 뽐낼 수 있는 판이다. 남성 연출가가 주류인 연극계에서 여성들이 교류하는 장이기도 하다.
올해는 20~40대 다양한 연령대의 연출가 8명이 활약한다. 최정선 연출가의 ‘비트윈(BETWEEN)’을 시작으로 함유운의 ‘꽃이 피질 않아요’ 최고은의 ‘스무고개’ 박효진의 ‘괜찮지 않은 이는 없다’ 모슬아의 ‘마지막 선물’ 최서은의 ‘경성견몽전’ 성화숙의 ‘테이레시아스의 눈’ 윤금정의 ‘춘희아씨’까지 8주간 매주 나눠 무대를 꾸민다. 오는 12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여우별씨어터. 전석 1만원.
권준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