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기자의 부교역자 대나무숲] 객(客)식구

입력 2017-10-20 14:44
‘이순범(가명) 집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본 박용권(가명·39) 목사는집회 인도 차 해외에 체류 중인 담임목사에게 보고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박 목사가 모든 장례예배를 집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이 집사와 가족들은 평소 지극한 ‘담임목사바라기’였다. 서운해 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망자는 임종 직전까지 담임목사를 찾았다고 했다. 가족들은 ‘하관예배라도 담임목사님이 인도해주실 수는 없느냐’며 몇 차례나 물었다.

교회는 25년 전 담임목사가 개척해 현재 700여명이 모일 정도로 성장했다. ‘가정 같은 교회, 가족 같은 성도’를 강조한 담임목사의 목회철학 덕분인지 구성원들의 유대감은 강했다. 그러나 ‘가족’의 울타리 안에 부교역자들은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박 목사는 “성도들 중 상당수가 부목사나 전도사를 ‘어차피 떠날 사람’으로 여긴다”며 “때문에 속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가까워질 기회를 얻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위임목사가 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담임한 교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시무한다. 그 기간은 수십 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교회에서 10년 이상 사역을 하는 부교역자는 흔하지 않다. 보편적으로 매년 연임을 허락받아야 임기가 보장되기에 ‘임시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객식구에 대한 홀대는 담임목사에 대한 충성심이 깊을 때 심해지기도 한다. 서울 동대문구 A교회에서는 부교역자들이 돌아가면서 주일 오후예배 설교를 한다. 하지만 지난달 최영환(가명·38) 목사에게는 ‘설교금지령’이 떨어졌다. 일부 성도들이 불편해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별히 실수 한 기억은 없다. 동료 부교역자들도 의아해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 했다고 자부했기에 충격이 컸다. 최 목사의 설교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내용이 좋다”며 회자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장로가 최 목사를 불러 말했다. “최 목사님 설교 중에 성도들의 ‘아멘’ 소리가 너무 컸어요. (설교를) 너무 잘 하실 필요 없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돋보이셔야지.” 그 장로는 “교회는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하는데 부목사의 인기가 높아지면 방해가 된다. 좋은 설교는 담임목회할 때 하라”고 충고하고는 자리를 떴다.

부교역자는 전통적으로 담임목사를 보조하는 역할로 인식돼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교단 헌법에서 부목사를 ‘위임목사를 보좌하는 목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임기는 1년이며 연임은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목회의 영역은 다양해 졌다. 담임목사 한명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다. 교회 전체를 아울러야 하는 담임목사와 달리 부교역자들은 음악, 교육, 심방, 사회복지 등 특정 분야를 깊이 연구하고 능력을 개발해 성도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럼에도부교역자는 여전히 동역자이기 보다는 보조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신학교 졸업 후에 전도사 과정을 거친 뒤 목사안수를 받는다. 이후 부목사로 본격적인 목회의 길을 들어서며 짧게는 2~3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부목사 경력을 쌓고 담임목회의 길을 간다.

부교역자 기간에는 성도들과 보다 친밀히 교제하며 교회 안의 인간관계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행정과 당회운영, 설교, 심방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만의 목회관을 정립해야 하는 때 이기도 하다. 이 기간을 잘 거친 이들이 바람직한 목회를 할 가능성이 크다.
가족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사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