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 작가’ 연기백(43)의 개인전 ‘마주하는 막’은 이들과의 협업에서 탄생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아마도예술공간’에서 15일 작가를 만났다. 연 작가가 “작품을 하는 과정에서 3∼4년 만나온 사람들”이라고 소개한 이들 세 명이 벽지에 바친 열정과 편린이 설치 작품 속에 녹아 있었다.
아마도예술공간은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다. 부엌 안방 작은방 거실 등 옛 집의 허름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옛 주방은 강씨의 공간이 됐다. 시인에게 자투리 도배지에 버리고 싶은 단어를 써서 보내 달라고 주문한 연 작가. 그렇게 해서 받은 도배지 속 글씨는 오려지고 도배지는 천자락처럼 내걸렸다. ‘줄타기’ ‘투기’ ‘농단’ 등 글씨 파편이 바닥에 수북하다.
안방 자리엔 장 건축가가 수집한 궁중 벽지와 개인사가 아카이브처럼 전시되고 있다. 한양대 건축과를 나온 장씨는 옛 궁궐 보수 과정에서 버려지던 벽지를 모았다. 애지중지하던 그 벽지의 일부가 궁궐 복원공사 때 빌려줬다가 통째 분실된 적도 있었다. 그 때의 안타까운 심정이 함께 전시된 일기에 오롯하다.
작고 어두컴컴한 방은 ‘도배 명장’ 신씨가 평생 사용해 온 도구들이 박물관 보물 마냥 뽐을 낸다. 롤러 칼 솔 등 100가지가 넘는다. 그가 고안한 공구도 있다. 신씨는 ‘지편전’ ‘도배통전’ 등 도배관련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서울대 조소과 출신인 연 작가는 2011년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방 도배지를 재료로 사용하다 매료됐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덧바르고 덧발라진 도배지는 겹겹이 개인의 기억이자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중첩된 흔적 사이에 우리가 읽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고고학 유적을 보듯 흥미롭더군요.”
연 작가는 “개인전이라기보다 도배와 벽지에 삶을 바친 이들과 함께한 공동 전시”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들과 마주하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전시제목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작가는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전시 등을 거쳤다. 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