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도 ‘연애장부’ 만들어 관리한 軍사관학교… “기본권 침해”

입력 2017-10-19 16:14
지난 2월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제73기 졸업식에서 사관생도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육군·해군·3군·간호사관학교가 ‘연애장부’를 만들어 생도들의 이성교제를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군을 제외한 모든 군 사관학교에 '관리' 명목의 이런 장부가 있었다. 성인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국방위원회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공군사관학교를 뺀 모든 사관학교가 생도끼리 연애할 경우 훈육관에게 보고토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황' 문건을 만들어 관리해왔다.

문건에는 생도들의 성별, 학년, 교제시기가 기재됐다. 해군사관학교는 가족관계와 거주지까지 기재했다. 이 의원은 “관리 명목으로 생도의 사생활을 수집하고 기록했다”며 “헌법 제17조와 군인복무기본법 제13조에서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도의 연애 가능 시기도 정해져 있었다. 육사와 해사는 1학년 생도 간 연애를 금지했고, 3사관학교는 3학년 2학기부터 연애를 허용했다. 또 육사는 1학년 생도가 다른 생도, 교내에 근무 중인 장병 및 군무원 등에게서 고백을 받으면 훈육관에게 보고토록 했다.

이 의원은 “육사는 올해에만 ‘교제 금지 대상과 미보고 하에 이성교제를 했다’는 이유로 7명 생도에게 단기 근신 처분을, 1명에게는 장기 근신 처분을 내렸다”며 “군이 이성교제를 사생활 영역이 아니라 규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엄현성 해군참모총장에게 “해군사관학교가 가장 빡빡하지 않나”라며 “규정에 비춰봐도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국가인권위원회 지적도 있었는데 군에서 수용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라고 물었다.

이에 엄 총장은 “선후배가 교제하다보면 다른 생도 지도교육에 문제 생길 수 있어 생도 생활이 잘 되도록 조치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 같다”면서도 “전적으로 이 의원 말에 동의한다. 비민주적 제도에 대해 최대한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군인정신은 생도의 사생활을 침해할 때가 아니라 자율 속에서 생도들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법을 배울 때 생긴다”며 “사관학교 연애 관련 예규는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헌법과 실정법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또 “군인들, 생도들도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행이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