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노동개혁 농민빈곤 청년실업 등의 정책 실패와 소홀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으로 박근혜정부를 향한 불만이 정점으로 향했던 당시 이 광장에 전국의 노동자와 농민이 집결했다. 민중총궐기 1차 투쟁대회였다. 경찰은 이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광장을 봉쇄하고 220개 중대 1만8000명의 병력과 살수차를 투입했다.
그날 전남 보성에서 새벽밥을 먹고 상경한 농민 백남기씨는 이 광장에 있었다. 백씨는 경찰의 차벽을 뚫기 위해 버스에 밧줄을 묶어 잡아당긴 시위대 속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 살수차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살수차에서 뿜어진 강력한 물줄기가 백씨의 머리를 직격했다. 백씨는 오후 7시30분쯤 구급차에 실려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이듬해 9월 25일 새벽 2시15분 병실에서 사망했다.
백씨에게 직사 살수한 ‘충남살수9호’
백씨에게 물대포를 발사한 차량은 충남지방경찰청 소속 ‘충남살수9호’였다. 충남지방경찰청은 시위대 진압을 위해 광화문광장에 동원된 다른 지방청 살수차의 호스가 끊기면서 이 차량을 대신 투입했다.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시위대에 발사했다. 진짜 문제는 충남살수9호가 펌프 회전수 3000rpm 이하로 수압을 낮출 수 없는 노후 차량이라는 점에 있었다. 이 강력한 물줄기가 지근거리에 있던 백씨를 쓰러뜨렸다.
충남의 한 경찰서 소속이던 한모·최모 경장은 살수를 맡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제4기동단 공춘학 장비계장은 신윤균 단장으로부터 충남살수9호 등 살수차 3대의 운용 권한을 넘겨받아 현장을 지휘했다. 이들 모두 살수차를 운용한 경험은 없었다. 행정업무를 맡은 최 경장은 집회대응 경험이 전무했다. 한 경장의 경우 2014년 8월부터 살수차 요원으로 근무해 교육을 받았지만 현장 경험은 같은 해 9월 충남 보령 플랜트노조 집회 1차례뿐이었다. 공 계장은 수십 차례 집회 현장에 투입됐지만 살수차를 운용한 적이 없었다.
살수차는 버스에 밧줄을 묶어 당기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직사 살수’ 지시가 윗선 어디로부터, 어느 경로로 두 경장에게 내려졌는지 지금까지 명확하게 가려지지 않았다. 공 계장은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내가 살수를 전반적으로 관리했다”고 인정했지만, 직사 살수 지시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경찰 버스 지붕에 있어 백씨의 상태를 인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 공 계장의 주장이었다.
“고의든 실수든 직사 살수는 위법”
백씨는 충남살수9호의 물대포를 맞고 넘어졌다. 이 차량은 바닥에 쓰러진 백씨의 머리를 향해 5초 동안 추가로 직사 살수했다. 백씨를 구조하기 위해 달려온 시위대를 향해 다시 15초 동안 다시 물대포를 발사했다. 백씨는 살수차에서 불과 7~8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경찰의 살수차는 시위대가 20m 거리 안에 있을 때 수압을 낮춰야 하지만, 충남살수9호 안팎에서 이런 규정에 대한 지시는 없었다.
살수차는 물대포의 방향을 조이스틱 모양의 조종기를 이용해 조정할 수 있다. 수압은 디지털 조작 방식으로 입력되지만, 민중총궐기 1차 투쟁대회 당시에는 페달을 밟아 실시간으로 조절됐다. 살수차 운용 경험이 없는 두 경장에게 조작은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지난달 2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에서 서울지방청 기동본부 살수차 시연을 통해 밝혀졌다. 한 경장은 집회 이튿날 ‘충남살수9호 사용 결과 보고서’에 “4기동단장(신 단장)이 무전망으로 ‘(충남)살수9호’에 급박하게 살수를 명령했다”고 작성했다. 하지만 신 단장은 지시를 부인하고 있다.
윗선의 지시에 의한 고의든, 미숙련 현장 실무자의 실수든 백씨의 머리를 조준한 직사 살수는 위법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지난 7월 4일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에게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등을 주도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등)로 징역 5년, 벌금 50만원을 선고하면서 백씨에 대한 경찰의 위법행위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직사 살수는 집회 참가자의 가슴 이하를 겨냥해야 하지만, 당시 경찰은 백씨의 머리에 연이어 직사 살수했다”며 “의도적인 행위든, 조작 실수든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