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다. 머리에 동전만한 탈모가 군데군데 생겨 병원을 찾았다. 처음엔 피부과 여러 곳을 다니며 주사도 맞고 치료를 받았지만 머리카락이 나는 듯 하다가도 새로운 부위에서 다시 탈모가 생기고 점차로 부위가 넓어져 병원을 찾았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말을 들어 학원도 끊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D는 어려서 영재 소리를 들을 만큼 명석한 아이였고 호기심도 많고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아 ‘아이디어 맨’으로 불리었다.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을 보고 블록 장난감도 몇 시간이고 앉아서 완성하는 등 집중력이 남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유치원이나 저학년 까지는 학교에서도 크게 문제가 없었고 공부도 어느 정도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어 공부해야 할 양이 많아지고 학원도 많아지면서 야단을 맞는 일도 늘었다. 공부를 할 때면 집중을 못해 밤 12시가 되도록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해도 다 해내지를 못하고 5학년이 된 나이에도 엄마가 옆에 붙어있지 않으며 멍 때리거나 손톱을 뜯거나 지우개를 문지르는 등 딴 짓을 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려서부터 말도 빠르고 똑똑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터라 부모의 기대도 높아 실망감도 컸다. 특히 아이가 ‘하고 싶은 거만 하려고 꾀를 부린다’는 생각에 부모님은 야단을 많이 치게 되었다고 한다. 반면 여동생은 할 일을 스스로 챙기고 공부도 스스로 하는 편이라고 저절로 둘을 비교하게 되었다.
원형 탈모가 생긴 후 깜짝 놀란 부모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고 생각, 모든 학원을 다 끊고 어릴 때처럼 칭찬만 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탈모는 점점 심해졌다. 이전에 다니던 학원이나 숙제의 양을 자세히 따져 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은 양은 아니었다. 평균적인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었으나 매일 12시까지 숙제를 한다면 D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학원을 끊어도 학교 숙제를 못해가는 일이 허다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검사를 해보니 D는 역시 지능은 몹시 높은 아이였다. 하지만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귀하고 좋은 구슬이 많이 쌓여있어도 잘 꿰지 못하면 소용이 없듯이 지능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프로세싱하는 집중력이 떨어지면 소용이 없다. 하지만 D는 순하고 행동이 크거나 산만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집중을 잘하기 때문에 부모는 D의 집중력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집중력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30%는 D처럼 ‘조용한 ADHD’에 해당한다. 이런 문제를 조기에 해결해 주지 않으며 현실 적응의 스트레스로 인해 D처럼 원형 탈모가 생기기도 하고 우울증, 불안 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원인이 되는 질환을 치료하고 나니 D의 원형탈모는 저절로 좋아졌다. 다시 머리가 빠지는 일도 없었다. 학습도 급격히 나아지고 보너스로 자신감도 회복됐다. 숙제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좋아하는 만들기를 할 시간이 늘어나 어려서처럼 다시 ‘아이디어맨’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이호분(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