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재판’ 이제 어떻게 되나… 결국 ‘궐석재판’으로?

입력 2017-10-17 09:06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단 7명이 모두 사임하면서 17일 예정돼 있던 공판은 열리지 않게 됐다. 재판부는 19일 공판부터 당초 계획대로 진행할 방침이지만 그러려면 변호인단이 사임을 철회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사임 철회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박 전 대통령 측 입장에 극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재판 파행은 불가피해졌다.

◇ 국선변호인 지정할 경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가 박 전 대통령 재판을 계속 진행하려면 반드시 ‘변호인’이 있어야 한다. 형량이 무거운 혐의여서 피고인에게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 ‘필요적 변론사건’이다. 사선 변호인이 없을 경우 재판부는 국선 변호인을 지정해 재판을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문제는 ‘시간’이다. 이 사건은 수사기록만 10만쪽이 넘는다. 새 변호인이 결정되더라도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새 변호인이 자료 검토에 필요한 시간을 요청할 게 분명하고, 재판부는 정상적인 변론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이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 짧게는 2~3주, 길게는 한 달 이상 재판이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구속기간은 내년 4월까지 연장돼 있지만 당초 예상은 연내에 선고가 가능하리란 것이었다. 주 4회 재판을 강행할 경우 남은 증인신문과 결심공판을 거쳐 선고공판에 이르는 물리적 시간은 두 달 정도다. 국선변호인을 새로 지정하고 변론 준비를 위한 시간을 보장하게 되면 연내 선고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 커지는 ‘궐석재판’ 가능성

박 전 대통령의 16일 법정 발언은 사실상 ‘재판 불복 선언’이었다. 그는 “구속돼 주 4회씩 재판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참한 시간이었다. 추가 구속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이 아닌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란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했다. 법률적 대응을 할 생각이 없으니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재판부가 알아서 하라는 취지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재판을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으로 규정했다. 그런 마당에 재판에 협조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미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는 제가 지고 갈 테니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물어 달라”는 말까지 한 상태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향후 재판 출석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그동안 몇 차례 법정 출석을 거부하거나 회피했고 재판부가 법정 불러내기 위한 구인장을 발부하기도 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앞으로 재판을 거부할 경우 역시 구인장 등을 통한 강제 출석을 시도하겠지만, 매번 구인장을 집행하며 재판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그럴 경우 피고인이 없는 상태로 진행하는 ‘궐석재판'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총사퇴’ 직접 결정

재판 파행을 부른 ‘변호인 총사퇴’ 카드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밝힌 건 16일이 처음이었고, 법정발언의 원고도 직접 작성했으며, 변호인단 총사퇴도 박 전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구속이 연장되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방미(23일) 전 출당 마무리’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지지층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며 ‘재판 흔들기’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는 이날 발언에서 “저를 믿고 지지해 주는 분들이 있어 포기하지 않겠다”며 지지자들에게 결속을 촉구하기도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재판 절차나 결정에 노골적으로 불복하는 건 재판부의 양형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이런 극단적인 전략은 (변호사들이) 좀처럼 제안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마저 이날 논평을 통해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건 변호사의 기본 임무이자 소명”이라며 “변호인단은 지금이라도 사퇴 의사를 철회하고 박 전 대통령을 위한 변호 활동에 전념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이 지연될 경우 ‘미결 구금기간’이 늘어나는 불리한 상황을 감수하고 박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건 자신을 둘러싼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서초동의 다른 변호사는 “법정에서 ‘정치적 외풍’이나 ‘여론 재판’ ‘정치보복’ 등의 민감한 용어를 쓴 건 유죄 선고의 우려를 드러낸 것”이라며 “법리 공방 대신 정치 쟁점화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이 자신의 출당을 저울질하고, 국정농단 핵심 피고인들이 줄지어 유죄를 선고받고 있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이 친박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며 자신의 결백도 재차 강조하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추가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검찰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이유로 변호인들이 사임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향후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