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온 몸으로 전달하는 심장의 펌프질이 갑자기 멈추는 급성 심장마비는 3분 이상 지속되면 뇌가 손상되고 5분이 넘어가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런 심장마비는 대부분 흡연이나 고혈압, 고지혈증 등이 원인으로 관상동맥이 좁아져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내 급성 심장마비 환자 7명 중 1명은 유전성 부정맥이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족력 또한 주요 발병 원인으로, 평소 심장병 없던 건강한 사람에게도 돌연 심장사가 올 수 있다는 의미다.
대한심장학회(이사장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 급성 심장마비 환자 1979명을 분석한 결과, 14.7%(290명)가 유전성 부정맥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고 16일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최근 서울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대한심장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부정맥은 심장을 뛰게 하는 심장 내 전기 신호가 고장나 생기는 질환이다. 그 중 브루가다 증후군, 긴QT 증후군, 우심실심근병증 등과 같은 유전성 부정맥은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발생하기 때문에 환자 자신이 유전적 요인이 있는지 평소에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 최종일 교수팀은 유전성 부정맥과 급성 심장마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 112만5691명의 코호트를 대상으로 9년 동안의 결과를 분석했다.
연구 기간 동안 총 1979명에게서 급성 심장마비가 발생했다. 연간 급성 심장마비 사망 발병률은 10만명 당 48.7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급성 심장마비 환자 중 60.8%(1203명)은 빠르게 심폐 소생술을 받아 생존했으나 39.2%(776명)는 결국 사망했다.
급성 심장마비 중 심근경색 등 허혈성 심장질환이 원인인 비율은 약 60% 정도로 나타났다. 서양권 국가가 70% 이상인 데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최종일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 급성 심장마비의 원인을 분석한 첫 통계자료"라면서 "유전성 부정맥이 원인인 비율이 약 1~2%인 서양과 약 10%인 일본보다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 중에 돌연 심장사나 부정맥 환자가 있는 경우 전문의와 상의해 미리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태호 대한심장학회 회장은 “부정맥을 진단하는 심전도 검사가 현재 국민건강검진 필수 항목에서 빠져 있다”며 “급성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을 줄이기 위해 국가적으로 심전도 검사를 국민건강검진 필수 항목에 추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