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으로부터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을 받았던 ‘전두환 회고록’ 제1권인 ‘혼돈의 시대’가 법원이 허위 사실로 판단한 33개 부분을 가린 채 13일 재출간됐다. 이에 5·18기념재단과 광주 지역 5월 단체들은 ‘전두환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를 위한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3일 수정본으로 재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의 띠지에는 ‘광주지방법원의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결정(2017.8.4) 내용 수정본’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책에는 법원이 허위 사실로 판단한 33개 부분을 검은색 잉크로 씌운 뒤 ‘법원의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결정에 의한 삭제’라는 설명을 넣었다. 문제가 된 내용을 삭제하지 않고 검은색으로만 가려 기존에 출간된 책과 페이지 수도 동일하다.
이에 대해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15일 “역사 쿠데타를 자행한 책을 폐기하지 않은 채 또다시 출간한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범죄”라며 “2차 소송을 통해 5·18 가해자의 파렴치한 역사 왜곡을 막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4월 구성된 ‘전두환 회고록’ 왜곡대응특별위원회와 5월 단체들과의 협의를 거쳐 조만간 2차 소송에 나선다.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사건을 주도해 온 김정호 변호사도 이날 중앙일보에 “5월 단체와 법률대리인들이 1차로 문제를 제기했던 33가지는 객관적인 사실 확인이 명확히 이뤄진 최소한의 부분”이라며 “기존의 1권 외에도 5·18 관련 재판 내용 등을 담은 3권 등의 내용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거쳐 추가 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올해 4월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 1권에서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을 “(5·18의)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표현했다. ‘5·18 민주화 운동’을 ‘광주사태’나 ‘북한군 개입에 의한 폭동’이라고 적기도 했다. 반란과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주장도 포함돼 있다.
이에 5·18기념재단은 6월12일 ‘전두환 회고록’의 판매 및 배포를 막기 위한 가처분 신청서를 광주지법에 제출했다. 이 소송에는 5·18기념재단과 5월 관련 세 개의 단체(민주유공자유족회·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가 참여했다. 5월 단체들은 전 전 대통령이 5·18에 대한 진실을 왜곡한 회고록이 시중에 유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광주 지역 법조인 등과 함께 소송을 진행했다.
광주지방법원은 8월4일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초과해 5·18의 성격을 왜곡하고, 5·18 관련 집단이나 참가자들 전체를 비하함으로써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저해했다”며 가처분을 인용했다. 이어 ‘전두환 회고록’을 발행, 인쇄, 복제, 판매, 배포 및 광고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판결 이후 이달 13일까지 ‘전두환 회고록’ 1권은 서점에서 판매가 불가능했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