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이후 사실상 ‘총수 대행’ 역할을 해온 권오현(65)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돌연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삼성전자가 이날 3분기(7~9월) 잠정 실적집계에서 매출 62조원, 영업이익 14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고 기록을 달성한 시점에 사퇴 의사를 밝힌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는 이날 권 부회장이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부품부문 사업책임자에서 물러나고,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및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만 수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겸직 중인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도 사임할 예정이다.
권 부회장은 임직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저의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라며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할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다행히 최고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용퇴 결정은 지난 8월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이뤄진 것이다. 권 부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하면서 윤부근 CE(소비자가전) 부문장과 신종균 IM(IT·모바일) 부문장 등 ‘전문경영인 3각 체제’에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권 부회장은 이 부회장 1심 선고 이후 사내 인트라넷 글을 통해 “지금 회사가 처해있는 대내외 경영환경은 우리가 충격과 당혹감에 빠져있기에는 너무나 엄혹하다”며 “사상 초유의 위기를 헤쳐나가려면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임직원의 결속을 독려했다. 이어 “지금까지 큰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일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며 “저희 경영진도 비상한 각오로 위기를 극복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덧붙였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