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가 아픈 이후 처음으로 ‘풀타임으로’ 명절을 보냈다. 인영이는 할아버지 산소도 따라가고 외할아버지 집에서 이틀 밤도 자고 왔다. 인영이는 대전 할아버지(친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해 혼란을 겪은 것을 빼고는 연휴를 즐겼다.
인영이가 아픈 이후 병원 생활을 하던지 아니면 윤영이만 데리고 아버지 성묫길에 올랐는데 올해는 온 가족이 갔다. 인영이는 할아버지 보러 가자는 말에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있다는데 어떻게 할아버지를 보러 가냐며 합리적 의심을 하더니, 산소 앞에서는 “근데 할아버지 어디 있어?”라고 물었다. 영혼과 육신의 분리를 어떻게 설명할 길 없어 저 안에 계시다고 산소를 가리키니 하늘나라에 있다며 왜 땅 속에 있느나며 따졌다. 인영이는 처음 보는 시골 어르신들한테 “우리 집에 놀러와”라며 편하게 말을 놔 아빠를 식은땀 나게 만들었다.
인영이는 성묘 다음날에는 네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여수 처갓집에 가서 이틀 밤을 자고 왔다. 모기에 몇 방 물렸지만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잘 놀다 왔다.
난생 처음 9일 연속 쉬어보니 참 좋았다. 연휴 첫 날 호캉스 간 것 외에는 특별히 계획하고 논 것도 없지만 집에서 인영이 엉뚱한 말에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쉼이고 힐링이었다.
몇 개 생각나는 인영어록.
“엄마 나중에 애기되면 내가 장난감 많이 사줄게.”(인영이는 나이가 들면 다시 아기로 돌아가는 건 줄 안다)
“엄마 잠이 안와. 내 안에 마법이 있어.”(잠이 안오는 심오한 이유를 설명하며)
“앗, 미안. 실수.”(언니 일부러 때린 뒤 실실 웃으며)
“우와 엄마 쭈쭈 진짜 이쁘다.”(병원 가는 고속 버스 안에서 엄마를 칭찬하며)
“엄마, 아빠 죽으면 엄마랑 언니랑 호텔 가자.”(호텔 수영장 또 가자는 걸 안 간다고 하자)
“아빠 오래오래 죽어.”(오래오래 (살다가) 죽어의 줄임말)
2년 가까운 투병생활동안 살얼음을 걷는 날들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두꺼운 얼음길을 걷는 기분이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지만. 정말 ‘오래오래 죽어’ 인영이가 낳은 딸의 손을 잡고 아버지 산소에 가고 싶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