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NAFTA 폐기, 곧 현실 될 수도”… 한미FTA도?

입력 2017-10-12 10:07

미국 뉴욕타임스가 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듭된 언급처럼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이 정말로 곧 ‘폐기’될지 모른다는 전망을 내놨다. 온라인판 톱기사로 보도했다. “폐기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그동안 협상전략이라고 여겨졌는데, “엄포가 아닐 수 있다”는 분석에 미국 언론이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나프타 협상 결과는 개정 협상을 앞두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나프타 협상 테이블에 ‘독약’이 올라왔다”

이날 미국 워싱턴 인근에선 제4차 나프타 재협상이 시작됐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관련국 대표들이 테이블에 마주앉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협정 폐기 가능성을 다시 언급했다. 협정 당사국 중 하나인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옆에 앉아 있는 자리에서 트럼프는 서슴없이 “폐기”를 거듭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트뤼도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장에 기자들을 불러들인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나프타 협상을 타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타결할 가능성도 있다. 협상이 미국에 필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미국) 근로자들을 보호해야 하고, 캐나다 총리도 캐나다 국민을 보호하기를 원한다”며 “나프타 협상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겠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나프타의 불공정성을 들어 반대해 왔다”고 덧붙였다.

트뤼도 총리는 이 자리에선 나프타 협상에 관한 언급을 자제했다. 하지만 회담이 끝난 뒤 캐나다 대사관에서 발언할 때 “나프타 협상을 낙관적으로 본다”면서도 “그러나 캐나다는 어떤 결과에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이 나프타 폐기 가능성을 거론하게 된 것은 이 같은 회담 분위기와 함께 협상 테이블에 여전히 남아 있는 몇 가지 의제 때문이다. 미국 상공회의소 토마스 도노휴 회장은 지난 10일 “나프타 협상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 경고의 종을 울리지 않을 수 없다. 거두절미하고 말하겠다. 협상 테이블에 몇 가지 ‘독약’이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도노휴 회장이 말한 ‘독약’은 미국 협상대표단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캐나다와 멕시코 측에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사안들을 뜻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이런 의제들은 당사국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어서 협정을 결국 폐기로 몰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프타 개정 협상은 8주째로 접어들었다. 연말까지 끝낸다는 목표 아래 진행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권에서 통상 담당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협상의 핵심 쟁점 분야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당사국들이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 협상대표단은 지금 ‘트럼프가 원하는 것’ 즉, 나프타 폐기를 위해 협상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협상 테이블에 올라 있는 ‘독약’ 가운데 가장 치명인 것으로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선셋 조항’을 꼽았다. 당사국들이 정기적으로 협정 연장을 결의하지 않을 경우 협정이 자동적으로 폐기되도록 하는 것이다. 관련 업계에선 그렇게 할 경우 너무 큰 불확실성이 초래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당사국 간 비관세 무역에서 ‘북미 지역 생산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높이는 것도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미국은 자동차와 부품의 경우 현지 62%인 북미 생산 비중을 85%까지 높이기를 원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기반인 미국 러스트벨트 근로자의 일자리를 위한 조치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 한·미 FTA 협상에도 열려 있는 ‘모든 가능성’

한미FTA 개정 협상을 지휘하고 있는 김현종 산업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측에 “한국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는 더불어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실제로 한미FTA가 파기될 수도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4일 미 워싱턴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의를 가졌다.

김 본부장은 협상 뒤 지난 10일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 등과 비공개 회동을 하면서 미국과의 FTA 재협상 내용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미국 측에 ‘한국이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갖고 오면 우리도 어찌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고 민주당 관계자가 밝혔다. 이 관계자는 “미 협상단에 맞서 한국 협상단도 한·미 FTA 협상이 파기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벼랑 끝 전술’로 맞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1차 회의에서와 달리 2차 회의에서 김 본부장은 더 공세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김 본부장은 협상장에서 “한·미 FTA 협정이 깨졌을 때 득을 보는 건 미국 기업이 아니라 중국”이라며 “미국의 무역수지 불균형은 한·미 FTA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구조적 문제”라고 설득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미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품목에 대해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많다. 우리 정부가 무엇을 요구할지는 다 정해 뒀고, 책으로 2권 분량인데 미국이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도 요구조건을 내걸 것”이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