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새 ‘경제사령탑’ 태종수… 김정일이 극찬했던 인물

입력 2017-10-11 11:07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태종수.

지난주 ‘북한 노동당 7기 2차 전원회의’는 긴급하게 소집됐다. 전원회의에 앞서 밟곤 하던 준비 과정을 생략한 채 전격적으로 개최했다. 첫 의제는 ‘조성된 정세에 대응한 당면 과제’였다.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북한이 경제제재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다룬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유 통제로 확대된 유엔 제재가 그만큼 북한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런 회의에는 통산 중앙당 후보위원까지 참석하는데, 이번엔 각 지방에서도 모두 불러들였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기관 책임자들을 다 참석시켰다. ‘자력갱생’이란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노동당 전원회의의 초점은 ‘경제’에 맞춰졌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국가전략으로 삼고 있다. 내년이면 이를 선언한 지 5주년이 된다. 핵과 경제 중에서 핵은 북한의 주장대로 완성 단계에 다다랐다. 하지만 경제는 별다른 성과가 없다. 오히려 강화된 유엔 제재로 석탄 섬유 등 1~3위 수출품목이 모두 묶인 데다 원유 확보로 어렵게 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김정은이 전원회의에 맞춰 단행한 북한 정부 인사개편에도 이런 사정이 그대로 반영됐다. 김여정의 승진, 최룡해의 입지 강화, 박광호의 깜짝 발탁 등 여러 특징을 꼽을 수 있지만, 전원회의 최우선 안건이 경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인사의 핵심은 ‘태종수’란 인물의 등장이다. 그는 김정은 정권의 새 ‘경제사령탑’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 은퇴했던 경제관료 81세 태종수의 복귀

태종수는 김정일 정권 때인 2007~2009년 북한 내각 부총리를 지냈다. 이후 함경남도 당위원회 책임비서를 역임한 뒤 사실상 은퇴한 상태였다. 1936년생으로 올해 81세. 고령의 은퇴 관료를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전격 임명했다. 이번 인사에서 70~80대는 대부분 퇴진하거나 2선 후퇴했는데, 유독 태종수만 현직에 돌아왔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11일 ‘북한 노동당 7기 2차 전원회의 특징 분석’이란 제목의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며 태종수의 복귀를 ‘제재 대응과 경제 건설을 위한 포석’ ‘전문 경제관료의 중용’이라고 분석했다. 경제라인 대오를 정비해 제재 내구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사라는 것이다. 연구원은 “김정은이 ‘지구전(持久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태종수는 중화학공업 전문가로 통한다. 체코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희천정밀기계공장 지배인을 맡았고, 2003년엔 대안중기계연합기계소 책임비서를 했다. 경제 분야의 성과를 인정받아 내각 부총리에까지 발탁됐던 인물이다. 그와 함께 안정수 경공업부장을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시키고 이주오 전 경공업상 및 현 부총리를 중앙위원에 임명한 것은 경제 전문가를 전면에 배치해 제재국면을 돌파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 “태종수는 줏대 있는 사람” 김정일이 극찬한 일화

북한 고위직 출신의 한 탈북 인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태종수는 북한에서 줏대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며 그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에 유럽의 한 기업이 북한에 합작투자를 추진했다. 북한의 한 공장을 현대화해 생산성을 높이는 사업이었다. 현대식 새 기계를 도입하려면 기존의 낡은 기계를 모두 해체해야 했다. 기존 기계의 해체 작업을 태종수가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이 인사는 “태종수는 기존 기계를 해체했다가 합작투자가 무산돼 새 기계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새 공장을 짓고 새 기계가 들어올 때까지는 절대로 해체할 수 없다고 고집했다. 당시 정권 상층부에서 엄청난 압력을 가했지만 끝까지 버텼다. 그런데 몇 년 지나 결국 합작이 무산됐고 신장비 도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태종수가 버티지 않았다면 생산설비만 다 날려버릴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일로 김정일이 태종수를 극찬하며 크게 치하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아버지가 인정한 경제통 인사를 제재국면 돌파 카드로 꺼내들었다. 연구원은 “중앙당에 새로운 경제정책 부서를 신설하거나 과거 부서(경제정책검열부 등)를 부활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전원회의에서 언급된 ‘김정은 보고내용’ 20개 문장 가운데 5개 문장에서 ‘제재’ 표현이 사용됐다. 김정은은 핵에 대해 ‘완수’해야 한다는 표현을 썼고, 제재는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경제사령탑에 고령의 고집 센 엘리트 관료를 발탁한 것이다.

당내 2개의 경제정책부서 가운데 오수용 계획재정부장은 유임됐고, 안정수를 경제담당 부위원장에 임명했기 때문에 태종수 신임 부위원장의 직함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제재국면의 대응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 역할을 맡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