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 듣도 보도 못한 소재와 전개에 너무 당황하지는 마시라. 김해숙과 김래원, 믿고 보는 이들 모자(母子)가 또 한 편의 절절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영화 ‘해바라기’(2006)와 드라마 ‘천일의 약속’(SBS·2011)에서 모자 호흡을 맞췄던 김해숙 김래원이 엄마와 아들로 다시 만났다. 곽경택 감독의 신작 ‘희생부활자’에서다. 제목부터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뒤 복수를 위해 다시 살아 돌아온다는 희생부활자(RV·Resurrected Victims)를 소재로 했다.
10일 서울 동대문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희생부활자’는 초현실적인 현상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기 위한 고민의 흔적들이 곳곳에 녹아있었다. 대중문화 분야에서 거의 활용된 적 없는 생소한 소재에,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모성애 코드를 버무린 것부터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극 중 엄마 명숙(김해숙)은 오토바이 강도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다. 가족들은 북받치는 슬픔 속에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7년이 흐른 뒤, 검사 진홍(김래원)은 누나(장영남)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엄마가 돌아왔다고. 명숙은 합당한 죗값을 치르지 않은 범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희생부활자가 된 것이다.
죽었다 깨어난 엄마를 마주한 진홍은 극도의 혼란에 휩싸인다. 그때 각성한 명숙이 공격을 개시한다. 한데 그 대상이 의아하다. 다름 아닌 진홍을 향해 칼을 들고 덤벼든다. ‘제 목숨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에게 대체 왜?’ 영화는 명숙의 비밀을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엄마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리게 된 진홍은 직접 진범을 찾아 나선다.
강렬한 오프닝으로 문을 여는 ‘희생부활자’는 그 끝을 예상하기 어려운 미스터리로 관객을 안내한다. 불안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이어가며 좀처럼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아리송한 지점마다 실마리를 하나씩 던진다. 각각의 퍼즐이 서서히 맞춰지면서 결국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된다.
영화는 곳곳에 물음표를 찍으며 흘러가는데, 그 동력은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력에서 비롯된다. 첫 스릴러 연기에 도전한 김래원은 혼돈·충격에 이어 반성·회한에 이르기까지 점층적으로 변해가는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감을 놓치는 법이 없다.
시사회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김래원은 “아직도 혼란스럽고 어려운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번 작품은 유독 감독님께 집요하게 질문했다. 귀찮아하실 정도로 계속 의문을 가졌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누르고 절제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런 저의 심리 상태가 영화에 그대로 담겨 다행”이라고 했다.
사건의 중심인 명숙 역을 맡은 김해숙은 이제껏 선보인 적 없는 엄마의 얼굴로 놀라움을 줬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표정, 그리고 아들을 공격할 때의 살벌한 눈빛. 극한 상황을 연기하면서도 뭉근한 모성 본능을 담아낸 건 김해숙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민 엄마’ 타이틀은 아무나 거머쥘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증명해 보였다.
친아들처럼 아끼는 후배 김래원과의 호흡은 역시나 만족스러웠단다. 김해숙은 “배우끼리 사이가 좋으면 아무래도 케미가 더 깊어진다. 세 번째라서 어떨까 싶었는데, 촬영에 들어가니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오더라. 서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번이 최고의 호흡이었던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연기 경력 42년. 여전히 그는 충무로에서 건재함을 과시하는 배우다. 김해숙은 “여배우가 할 작품이 없다는 얘기가 많은데, 중견 여배우로서 제가 그 짐을 지고 관객을 만나게 돼 행복하다. 후배들이 올라오는 길을 다진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 여배우도 나이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