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기적의 완주’… 월드컵 본선만큼 짜릿했던 28개월

입력 2017-10-10 21:25 수정 2017-10-10 22:00
시리아 축구대표팀 공격수 오마르 알 소마(왼쪽)가 10일 호주 시드니 ANZ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플레이오프 2차전 원정경기에서 전반 6분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AP뉴시스

홈구장은 바라지도 않았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완주할 수 있도록 경기장을 빌려줄 나라만 있어도 다행이었다. 7년째 화염과 폭음에 휩싸인 조국에서 축구협회는 이미 기능을 상실했고, 선수 중 일부는 난민으로 전락했다. 국가대표 경기는커녕 선수 소집도 어려웠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일원으로 2년 넘게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소화하는 것,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시리아 축구대표팀 얘기다.

시리아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단 한 번도 홈경기를 하지 못했다. 아시아 2차 예선부터 플레이오프까지 20경기 중 홈경기로 배당된 10경기를 제3국에서 소화했다. 이란 마슈하드, 오만 무스카트, 말레이시아 세렘반·크루봉·말라카가 이들의 안방이었다. 사실상 모든 경기가 원정이었다. 제3국은 물론 원정지 적진의 관중까지 응원과 격려로 환대했지만, 정작 시리아 선수들이 원했던 것은 국민의 함성이었을 것이다.

2011년 3월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국토는 정부군 시민군 이슬람국가(IS)에 의해 3등분 됐고, 인구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민 500만명은 세계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국민 모두가 전몰자, 난민, 인질 아니면 생존자다. 하지만 내전의 원흉으로 지목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나 시아파 동맹국을 끌어들여 포화를 키우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수니파인 시리아에서 권력을 장악한 계층은 인구의 13%에 불과한 시아파 분파 알라위트. 아사드 대통령은 그 세력의 수장이다.

시리아 국기를 가슴에 새긴 유니폼은 선수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사드정부를 대표한다. 선수들은 한때 아사드 대통령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테랑 공격수 피라스 알 카티브(알 쿠웨이트)가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복귀하고, 간판 공격수 오마르 알 소마(알아흘리)가 합류하면서 시리아 선수들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사드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위해 월드컵 본선 진출에 도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시리아는 파란을 일으켰다. 2015년 6월부터 10개월 동안 진행된 아시아 2차 예선 E조에서 6승2패를 기록했다. 일본(7승1무)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최종예선으로 넘어갔다. 보다 강력한 상대와 싸우는 최종예선에서 시리아는 A조 최약체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시작된 최종예선에서도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한국과 득점 없이 비기고 중국, 우즈베키스탄을 연달아 1대 0으로 격파했다.

클라이맥스는 지난달 6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최종예선 A조 마지막 10차전 원정경기였다. 시리아는 예상을 깨고 이란과 2대 2로 비겼다. 승점이 같은 우즈베키스탄을 2골 차이로 따돌리고 아시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시리아의 월드컵 도전사에서 본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성적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시리아는 10일 호주 시드니 ANZ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 플레이오프 2차전 원정경기에서 호주에 1대 2로 역전패했다. 두 팀은 지난 5일 말라카 항제밧 스타디움에서 격돌한 1차전을 1대 1 무승부로 마쳤다. 최종 전적 1무1패. 시리아는 아시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경기 초반만 해도 기적이 실현되는 듯 했다. 시리아는 전반 6분 역습 때 알 소마의 선제골로 앞섰다. 하지만 호주의 저력이 녹록치 않았다. 호주의 베테랑 스트라이커 팀 케이힐은 전반 13분 헤딩슛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고, 전·후반 90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넘어간 연장전에서 후반 4분 역전 결승골을 터뜨렸다. 호주는 이후부터 육탄방어를 시작했다. 시리아는 파상공세에 나섰지만 호주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포화에 휩싸인 조국을 밟지 못하고 28개월 동안 타국을 전전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시리아의 도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호주는 북중미 4위와 다음달 중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아시아·북중미 플레이오프를 갖는다. 아시아와 북중미에 0.5장씩 나눠진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1장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여기서 본선 진출 여부가 확정된다. 미국 파나마 온두라스 중 하나가 호주를 상대한다. 현재 미국은 승점 12점으로 3위, 파나마는 승점(10점)이 같은 온두라스를 골 득실차(5골)로 밀어낸 4위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