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국가와 도쿄 전력에 책임을 물은 집단소송에서 일본 법원이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일본 후쿠시마 지방법원은 10일 후쿠시마현에 거주하는 주민 등 3800여명이 원전사고로 생활기반을 잃고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며 국가와 도쿄 전력에 총액 160억엔의 배상을 요구한 집단소송에서 피해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고 일본 NHK, 아사히신문 등이 보도했다.
법원은 국가와 도쿄 전력의 원전사고 책임을 인정하고 원고 3824명 중 약 2900명에 총 4억9000만엔(약 49억원)를 지불하도록 명령했다. 이중 국가에 대해서는 절반 가량인 2억5000만엔(약 2억5000만원)을 배상토록 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국가와 도쿄 전력이 대규모 해일을 사전에 예측하고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피해주민들은 국가와 도쿄 전력이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가 발표한 ‘장기평가’ 등을 근거로 원전의 부지 높이를 초과하는 쓰나미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는 2002년 7월 “진도 8의 해일 지진이 30년 이내에 20% 정도 확률로 발생한다”는 장기 평가를 공표한 바 있다. 반면 국가와 도쿄 전력 측은 장기평가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2002년 정부의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가 발표한 지진의 평가에 따라 해일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으며 원전 부지를 넘는 해일을 예측하는 것은 가능했다”며 “해일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도쿄 전력에 지시했다면 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사고를 막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안전확보 책임은 일차적으로 도쿄 전력에 있는 만큼 국가의 책임 범위는 절반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생활환경을 원전 사고 이전 수준으로 돌려달라는 주장은 기각됐다. 피해 주민들은 “원전 사고 이전의 삶을 되찾고 싶다”며 거주지의 방사선량을 사고 전 수준인 시간당 0.04 μSv/h(마이크로시버트) 이하로 원상 복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실현될 때까지 매월 5만엔의 위자료를 요구했고, 일부는 원전 사고로 가족 및 지인, 직장 등을 잃었으므로 1인당 2000만엔의 ‘고향 상실’ 위자료도 요구했다. 이에 정부와 도쿄 전력은 방사선량을 낮추는 구체적인 방법이 불명확하고 금전적으로도 불가능하며, 배상에 대해서도 국가 표준 중간 지침에 따라 지불한 금액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었다.
일본에선 원전 사고에 대한 집단 소송이 전국의 약 30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중 판결이 내려진 곳은 마에바시, 지바에 이어 후쿠시마가 세 번째다. 원고 수가 가장 많은 이번 재판은 향후 판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앞서 지난 3월 마에바시 지방법원은 도쿄전력뿐 아니라 국가에도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처음으로 내렸다. 또 지난 9월 지바 지방법원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지바현에 피난한 45명이 생활기반을 잃어버리는 등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며 국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도쿄전력에만 배상을 판결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