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상, 불나방 같던 고집왕의 슬럼프 극복 분투기 [인터뷰②]

입력 2017-10-10 09:37
영화 '범죄도시' 주연배우 윤계상. 키위미디어그룹 제공

“누가 그러더라고요. 저는 불나방 같은 사람이라고. 불 속인지 알면서도 내 확신만 있다면 무작정 뛰어드는 사람이라고요.”

윤계상(39)은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고집이 꽤나 센 편이다. 1999년 그룹 god(지오디) 멤버로 데뷔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다 2004년 영화 ‘발레교습소’를 계기로 배우로 전향한 그는 언제나 확고한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작품을 선택해왔다. 필모그래피만 살펴봐도 그의 대쪽 같은 성정을 짐작할 수 있다.

‘비스티 보이즈’(2008) ‘집행자’(2009) ‘풍산개’(2011) ‘소수의견’(2015)…. 대체로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선택들이었다. 그럼에도 작품성 하나만을 믿고 기꺼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계는 찾아오고 말았다. 잇단 흥행 고배를 마시며 수없이 많은 슬럼프를 겪어내야 했다.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대중의 시선을 등지지 않았었나 싶어요. 저는 순수예술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한참 뒤에 눈을 딱 떠보니 실은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대중에게 어필하려고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외로워졌죠.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도 깊어졌고.”


“더 똑똑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윤계상은 “난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기에 대중의 요구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게 내가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나. (지금까지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내 욕심과 대중이 원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보다 열린 마음을 갖기 시작한 건 ‘레드카펫’(2014)을 찍을 때쯤이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때로는 극장에서 무거운 영화 보기 싫을 때가 있는데 지금껏 왜 그런 영화만 고집했을까.’ 그때부터 가벼워졌어요. ‘사랑의 가위바위보’(2013) ‘극적인 하룻밤’(2015) 등이 그렇죠. 옛날의 윤계상처럼 쾌활한 모습을 시도해봤어요.”

그러던 중 ‘굿 와이프’(tvN·2016)를 만났다. 전도연 유지태와 호흡을 맞춘 이 드라마는 작품성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고, 윤계상에게는 그간의 흥행 목마름을 말끔히 날려준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이윽고 ‘범죄도시’까지 터졌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는 관객 입소문에 힙 입어 경쟁 대작 ‘남한산성’과 ‘킹스맨: 골든 서클’을 차례로 제치며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라섰다. 막바지 추석 극장가를 들썩이게 한 대이변이었다. 온전히 작품 자체의 힘만으로 일궈낸 쾌거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배우로 살아온 13년이란 세월. 그동안 윤계상의 양 어깨를 짓눌러온 부담감은 이제 깃털처럼 훌훌 날아가 버린 듯하다. “지금은 진짜 많이 편해졌어요. 역시 경험치가 어디 안 가더라고요. 이제야 조금씩 (연기라는 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정확한 수를 계산하고 연기하거든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 본인의 행복을 찾는 법도 깨달았다. 윤계상은 “많은 관심을 받으며 살다 보니 내 자아가 무너진 적이 많다. 내가 하는 것보다 과장되게 사랑받고 과하게 죗값을 치러야 하는 직업이 아닌가. 그런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 스스로 떳떳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하면 날 안 좋게 보던 사람들도 순화가 되더라고요.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는 더 에너지를 드리게 되고요. 모두가 행복한 사람 옆에 있고 싶어 하잖아요. 저도 그 방법을 쓰기 시작했더니 삶이 달라졌어요. ‘함께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렇게 기적처럼 매일을 살고 있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