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탄”은 면피용이었나?… “유탄” 뒤집히니 3명 영장

입력 2017-10-09 16:01
픽사베이 자료사진

지난달 26일 강원도 철원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이모 일병 사건이 “도비탄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던 당초 육군 설명과 달리 “직선으로 날아온 유탄”에 맞은 것으로 국방부 특별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 일병이 전투진지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다 변을 당할 때 인근 사격장에선 사격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육군은 사건 직후 이 일병 부대의 이동경로 부근에 사격장이 있었다며 ‘도비탄’ 가능성을 가장 먼저 제시했다. 도비탄(跳飛彈)은 총에서 발사된 탄환이 딱딱한 물체에 부딪혀 정상 각도가 아닌 방향으로 튕겨나간 것을 말한다.

사격장에서 도비탄은 종종 발생하지만 그것에 맞아 생명까지 잃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지적과 함께 의문이 제기됐다. 육군의 설명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를 주문했고,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특별수사 지시를 내렸다.

국방부는 9일 열흘 남짓 진행해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도비탄이 아닌 ‘직격탄’에 의한 사망이라고 발표했다. 직선으로 날아온 탄환에 맞았는데 조준사격은 아니었다고 했다. 조준한 곳에 맞아 않은 채 빗나간 탄환을 뜻하는 ‘유탄(流彈)’에 숨졌다는 것이다.

총상 원인이 유탄으로 규명되면서 후속조치도 함께 발표됐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사격훈련통제관으로서 경계병에게 명확하게 임무를 부여하지 않은 중대장과 병력인솔부대의 간부인 소대장, 부소대장 등 3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육군의 당초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도비탄’이란 전문용어에 여론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철저한 조사를 주문하지 않았다면, 관련 부대 관계자들을 일일이 조사하는 열흘간의 특별수사가 없었다면 이 일병의 죽음은 또 한 건의 의문사가 될 뻔했다.

◇ ‘도비탄’이 ‘유탄’으로 뒤집힌 근거

국방부 조사본부는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현장 확인 및 감식, 사망자 부검 등을 통해 총상 원인 규명에 나섰다. ①도비탄 ②조준사격 ③유탄의 세 가능성을 설정하고 하나씩 검증하는 방식이었다.

국방부는 먼저 부검 및 감식 결과를 정밀 분석해 “도비탄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망자의 머리에서 회수한 탄두(파편화된 4조각)를 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감정한 결과 우리 군이 사용하는 5.56㎜ 탄두 파편이 틀림없었는데, 탄두에서 충돌 흔적과 이물질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도비탄이라면 사망자 머리에 박히기 전 다른 물체와 충돌한 흔적이 남아 있어야 했다. 또 우측 광대뼈 부위에 형성된 사입구(탄두가 신체에 들어간 입구)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탄환이 다른 간섭 없이 날아왔음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두 번째로 검증한 직접 조준사격은 세 가지 점에서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①사격장 끝단 방호벽에서 사건 장소까지 60m 구간은 수목이 우거져 있는 데다, 사격지점에서 사건 장까지 거리는 340m로 육안에 의한 조준사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②사격훈련부대 병력이 병력인솔부대(이 일병 부대)의 이동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해 이동시간에 맞춰 조준사격을 계획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③사격훈련부대와 병력인솔부대가 다르고 병력 상호간 일면식이나 개인적 원한관계가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탄 가능성은 사격장 구조를 분석한 결과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사격장은 200m 표적지를 겨냥해 사격훈련을 할 때 총구가 2.39도만 상향 지향돼도 탄환이 사격장을 벗어나 이 일병이 있던 지점까지 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는 구조였다. 조사본부는 사격 때 반동이 발생하는 가스작용식 소총의 특성상 총구가 2도 남짓 치켜 올려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사격장 방호벽 끝에서부터 60m 떨어진 사건 장소 주변의 나무 등에서 70여개나 피탄흔이 발견된 점을 들었다.

국방부는 이 같은 조사와 분석 그리고 추론을 통해 도비탄이나 조준사격이 아닌 ‘실수로 잘못 쏜 총탄’이 이 일병에게 직접 날아갔던 것이라고 발표했다.

◇ 3명 구속영장, 16명 징계… ‘유탄’ 맞은 군 간부들

국방부는 “수사 결과 사고 원인은 병력인솔부대, 사격훈련부대, 사격장관리부대의 안전조치 및 사격통제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①병력인솔부대는 진지공사 후 도보로 복귀하던 중 사격 총성을 듣고도 병력 이동을 중지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는 등 안전통제가 미흡했다. ②사격훈련부대는 사건 장소인 영외 전술도로에 경계병을 투입하면서 명확한 임무를 부여하지 않아 사망자 등을 포함한 이동 병력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③사격장관리부대는 사격장에서 영외 전술도로 방향으로 직접 날아갈 수 있는 유탄에 대한 차단 대책을 강구하지 못했고, 사격장 및 피탄지 주변 경고간판 설치 등 안전대책이 미흡했다. ④사단사령부 등 상급부대에서는 안정성 평가 등을 통해 사격훈련부대와 영외 전술도로 사용부대에 대한 취약요소를 식별하지 못하는 등 조정 및 통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사격훈련통제관이었던 훈련부대 중대장과 병력인솔부대 간부인 소대장 및 부소대장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또 사단장 등 사령부 책임간부 4명, 병력인솔부대 사격훈련부대 사격장관리부대의 지휘관 및 실무자 12명 등 16명은 지휘감독소홀 및 성실의무위반 등의 책임을 육군에서 조치토록 했다.

군은 이 사격장 사용을 즉각 중지시켰고, 군의 모든 사격장에 대한 특별점검을 통해 안전 위해요소를 파악키로 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