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다. 한가위만 같으라고 했다. 1년간 흘린 농부의 땀방울이 결실을 맺으니 온 가족이 모여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1970∼80년대 추석은 산업화의 그늘을 어루만지는 진통제였다. 일을 찾아 도시로 떠난 이들이 팍팍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애잔한 기다림 끝에 추석을 맞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있겠나 싶다. 이제 국어사전에 올라도 될 법한 조어 ‘명절증후군’이 달라진 추석의 풍경을 말해준다. 이번 추석은 전례 없이 길었다. 최장 열흘을 쉬다보니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도 그만큼 힘들어졌다. 명절증후군의 여러 증상이 어느 때보다 심해질 상황에 우리는 놓여 있다.
◇ 요통, 복통, 손목터널… 명절증후군의 여러 증상
명절증후군은 연휴 동안 깨진 생체리듬을 안고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을 일컫는다. 피로가 안 풀리고,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소화불량과 미열 등이 생기면 이를 의심해봐야 한다.
주요 증상은 차에 장시간 앉아 있거나 명절 음식 준비 등 다양한 ‘노동’에 시달려 나타나는 요통, 기름진 고열량 음식을 많이 섭취해 발생하는 복통, 노동과 함께 긴장과 스트레스를 겪다보면 찾아오는 근육통이 있다.
손목터널증후군은 주부들이 겪는 대표적인 명절증후군이다. 차례상을 준비하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과정에 손목을 무리하게 사용해 발생한다. 손목 인대가 손에서 팔로 이어지는 수근관을 눌러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명절 음식은 대부분 높은 열량의 탄수화물과 당류를 포함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집계한 2011~2015년 소화불량 환자는 약 300만명이었는데, 이중 약 40%가 설 명절이 있는 1~2월과 추석이 있는 9~10월에 발생했다. 평소 식습관과 다른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까닭에 명절을 보낸 뒤 소화기능 장애를 겪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번 추석연휴는 최대 10일간 이어진 터라 ‘생체리듬의 파괴’가 가장 우려된다. 일상에 복귀한 뒤에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거나 온종일 멍한 느낌을 겪으며 어지럼증 등에 시달릴 수 있다. ‘휴식’ 탓에 생긴 병이어서 휴식을 통해 풀 수도 없다. 심할 경우 만성피로나 우울증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 명절증후군 대처 방법은
무기력증을 피하기 위해서는 연휴 마지막 날 충분히 쉬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낮잠이나 TV 시청 등 정적인 휴식보다 가족과 함께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을 하며 몸의 움직임을 늘리고 소통의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 업무 복귀 후에도 1주일 정도는 늦은 술자리나 회식을 피하면서 적절한 수면습관을 되찾아햐 한다.
명절에 많이 써서 피로해진 ‘손’은 연휴가 끝난 뒤에도 회사 업무 등을 위해 계속 사용해야 한다. 손목터널증후군 등 손의 피로와 통증을 최소화하려면 수시로 스트레칭을 해주는 수밖에 없다. 1시간에 5분씩은 손 사용을 멈추고 팔을 정면으로 뻗은 상태에서 손목을 아래로 꺾어 반대 손으로 손등을 잡고 꺾은 방향으로 5초간 당겨준다. 이후 손목을 위로 꺾어 같은 방법으로 양쪽 각각 3회씩 진행한다. 다음은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동시에 팔꿈치를 굽혔다 폈다 10회 반복한다. 손목 부위에 10~15분간 40도 정도의 온찜질을 해주는 것도 좋다.
산책과 운동은 소화불량을 해소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고 장의 운동을 촉진할 수 있다. 동시에 보리차 등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속을 달래줘야 한다. 더불어 물을 많이 마시고,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섭취하는 것도 명절증후군 극복에 도움이 된다. 커피나 탄산음료를 많이 섭취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면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편안하게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바른 수면자세만으로도 긴장된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고 심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급적 자연스러운 차렷 자세로 자는 것이 좋다. 옆으로 자는 게 편하다면 측면수면도 가능하지만, 목 어깨 등에 부담 없는 자세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정아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상에 복귀하면 저녁마다 미지근한 물로 10분 정도 가볍게 샤워를 하고 명절에 무리하게 사용했던 관절·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스트레칭을 한다면 명절증후군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명절증후군’에 투영된 배려 결핍 사회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1990년대 후반 처음 등장할 때 사용됐던 표현은 ‘명절 후 증후군’이었다. 주부들이 명절노동에 시달린 뒤 겪는 통증과 스트레스를 일컬었다. 이를 압축한 명절증후군이란 말에는 그 노동을 실제 하기도 전부터 정신적 고통이 시작된다는 의미가 추가됐다. 설레며 기다리던 추석을 고통스러워하며 기피하려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간다.
명절이 공동체의 갈등 요소로 변질되고 있다. ‘명절 이혼’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포털사이트에선 추석과 설 연휴가 끝난 뒤 ‘이혼’을 검색하는 횟수가 급증한다. 법원에 접수되는 이혼소송 건수도 명절 다음 달이면 크게 늘어나며 이는 해마다 반복되는 현상이 됐다. 이혼한 남녀를 조사하니 남성의 44%, 여성의 60%가 “이혼 결심에 명절이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명절증후군이 미치는 범위도 확대되는 추세다. 주로 주부들이 고통을 호소했는데 요즘은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시어머니까지 그 증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명절증후군은 마음의 병에서 비롯된다. 온 가족이 모였을 때 누군가 불편해한다면 불편함을 덜어주는 가족의 배려가 유일한 처방일 것이다. 이 용어가 등장한 직후부터 수많은 전문가들이 신문과 방송에서 배려의 처방을 조언했지만 우리는 20년 가까이 같은 병을 앓아가며 명절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를 배려하려면 내가 달라져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기존의 의식(意識)과 의식(儀式)을 바꾸지 못한 채 너무 오랜 세월을 지냈다.
이것은 한 가족의 명절나기를 넘어서는 문제일 수 있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저출산 위기 역시 출산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턱없이 부족했던 문화와 무관치 않다. 양극화 문제도 경쟁 일변도의 세상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씀씀이가 정책에 스며들어 있었다면 이처럼 빠르게 잠식해 오진 않았을 것이다.
불운하게 저성장 시대에 태어난 실업 청년부터 100세 시대를 감당해야 하는 노인까지 배려가 필요한 대상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들의 불편함을 덜어줄 준비는 돼 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