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이 길었던 추석연휴도 막바지에 왔다. 최장 열흘간 휴식을 즐기는 동안 한국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여러 이슈도 침잠했다. 하지만 사라졌던 것은 아니다. 휴식이 끝나고 일상이 재개되면 다시 고개를 들려고 기다리는 대표적 현안, 세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닥쳐올 수 있는 상황은 북한의 추가 도발이다. 이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치소에 계속 가두느냐 풀어주느냐를 결정해야 하며,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린 신고리 5·6호기 원전의 운명도 연휴가 끝난 뒤 일주일 안에 판가름된다. 잠시 미뤄뒀던 우리 사회의 고민은 긴 연휴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쌍십절 도발’ 조짐 뚜렷한 北… ‘미치광이’ 전략 맞불 놓은 美
북한이 노동당 창건 기념일(10월 10일)을 전후해 장거리미사일 추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사일 시설이나 기지 등에서 미사일 발사 관련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9일 “북한의 도발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아직 없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10일은 북한의 노동당 창건일이자 미국의 콜럼버스데이다. 한·미 군 당국은 10일과 함께 중국 19차 당대회가 열리는 18일도 유력한 도발 시점으로 보고 대북 감시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은 각각 U-2S 고공전략정찰기와 RC-800, RF-16 정찰기와 조기경보통제기 등을 증강 운용하며 북한 움직임을 감시 중이다.
북한이 도발에 나선다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을 발사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국제문제위원회 소속 안톤 모로조프 의원은 지난 6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북한이 더 강력한 장거리미사일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시험이 계획된 미사일의 사거리가 1만2000㎞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군사행동’을 강하게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지난 25년 간 역대 미국 정부와 대통령들이 북한과 대화를 했고 합의가 이뤄졌고 거액의 돈이 지불됐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미안하지만, 단 한 가지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로이터 통신은 “군사행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걸 시사하는 발언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북한은 연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한두 차례 더 감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직접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를 언급한 이상 도발 효과를 극대화할 시점과 방식을 택하는 일만 남았다는 평가다. 노동당 창건 기념일(10일)은 그 1차 고비다. 동시에 국면 전환의 계기도 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18일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북핵 문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세 변화를 가져올 변수로는 우선 중국의 중재론이 거론된다. 중국 당 대회 이후 시진핑 국가주석이 북·중 관계를 복원하고,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당 대회가 끝나면 중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북·미 대화를 리드하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이나 북한도 갈등 국면을 지속했을 때의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런 흐름 속에서 국면 전환의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 주석과 김 위원장간 불신이 깊어 관계 복원이 이뤄질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현재 북·중 간 고위급 채널은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북한의 다음 도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에 모의 핵탄두를 달아 정상 각도로 5000㎞ 이상 날려 보내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는 미 본토를 겨냥한 핵 공격 능력 과시다. 내년 초 북한이 핵보유국을 선언하면서 핵·미사일 시험 ‘모라토리엄’(유예 및 중단)을 들고 나올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연말까지는 북·미 간 강대강 대치로 가다가 내년 초 북한이 핵보유국을 선언하면서 대화 국면을 주도하겠다는 판단하에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그 조치가 핵·미사일 시험 모라토리엄”이라고 말했다.
◇ 박근혜 구속기간, 17일 0시 만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연휴가 끝난 직후인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혐의에 대한 78차 공판을 진행한다. 박 전 대통령의 추가 구속 문제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단이 ‘의견진술’을 할 예정이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구속기한까지 증인신문을 종료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일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요청한 상태다.
박 전 대통령은 10월 16일에서 17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구속기간이 만료된다. 그 전까지 1심 재판이 종결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계속 구속 상태로 두려고 혐의를 추가해 새로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재판부는 현재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혐의는 18가지나 돼 더 심리해야 할 사안과 증인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검찰은 지난 재판에서 27명의 추가 증인을 신청했고 10월30일까지 순차적으로 신문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변호인도 박 전 대통령의 무죄 입증에 유리한 증인을 추가로 신청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진행 상황을 볼 때 박 전 대통령의 1심 공판이 ‘100회’를 넘길 것으로 본다. 100회를 넘기는 재판은 사법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재판부는 10일 공판에서 검찰의 ‘박 전 대통령을 계속 구치소에 가둬야 하는 이유’와 변호인의 ‘석방 후 불구속 재판을 해야 하는 이유’를 듣고 추가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롯데와 SK에서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혐의를 추가로 제시했다. 또 이대로 석방할 경우 증인들과 말을 맞추거나 증거를 인명하거나 재판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출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변호인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할 게 분명하다. ‘고령의 여성’이 6개월간의 수감생활로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주장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6-4-4’ 원칙은 변호인의 주된 논거 중 하나다. 구속 후 1심은 6개월과 2심과 3심은 각각 4개월 안에 끝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불구속 재판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추석연휴 전부터 심심치 않게 제기됐던 ‘박근혜 석방설’의 진위는 연휴가 끝난 뒤 일주일 안에 가려지게 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국정농단 재판도 재개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들의 뇌물 재판 항소심은 12일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본격 재판이 시작된다.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비리 재판 2심도 10일 열리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재판은 13일로 예정돼 있다.
◇ 신고리 5·6호기 시민참여단, 15일 최종 찬반조사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문제는 사실상 이번 주말 결정된다. 공론조사 시민참여단은 13~15일 종합토론을 갖고 최종 찬반조사를 벌인다. 공론화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론을 20일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시민참여단의 결론을 가능한 한 그대로 수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공론화위원회는 지금까지 대국민 여론조사(1차 조사)로 시민참여단 500명을 선정했고, 지난달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설문조사(2차 조사)를 진행했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478명이 합숙 종합토론 시작하는 시점에 3차 조사, 마무리 시점에 4차 조사를 하게 된다. 이 중 관련 정보를 모두 숙지한 뒤 실시되는 4차 조사가 최종 결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4차 조사에서 찬성과 반대 의견이 큰 차이를 보이면 결론은 쉽게 도출될 수 있다. 하지만 찬반이 비슷하게 나올 경우, 특히 오차범위 내에서 의견이 갈릴 경우엔 위원회의 고민이 시작된다. 1~4차 조사에서 찬반 비율이 급격하게 뒤집힌 경우에도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갤럽의 지난 4차례 여론조사는 건설 중단과 계속이 각각 40% 안팎을 기록하며 엇비슷한 비율을 유지했다.
2박3일 합숙 종합토론은 13일 오후 7시부터 15일 오후 4시까지 천안 교보생명연수원에서 진행된다. 3·4차 조사 사이에는 찬반 토론회와 특강, 전체토의, 질의응답 등이 마련됐다. 시민참여단이 직접 찬반 입장에 서서 토론하지는 않고, 찬반 측 전문가들의 주장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이 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 종합토론은 부분적으로 TV 생중계 등의 방식으로 일반 국민에게도 공개된다.
합숙 이후 공론화위원회는 닷새간 보고서 형태의 권고안을 제작한다. 권고안의 공개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결과를 포함한 공론조사 진행 경과와 의미에 대해 대국민 보고도 할 예정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