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허위츠-한스 짐머, 생생한 영화음악으로 가을밤 수놓다

입력 2017-10-08 20:21 수정 2017-10-10 18:52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가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페스티벌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가 지휘봉을 휘젓자 무대 위 대형 오케스트라가 극 중 명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꿈과 현실을 놓고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가 무대 중앙을 비롯해 전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5개를 통해 관객 1만5000여명에게 펼쳐졌다. 영화를 보면서 음악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는 필름 콘서트 형식의 무대였다. 가을 저녁 야외무대 돗자리 맥주 그리고 라라랜드의 음악.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처음 선보인 페스티벌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슬라슬라)’의 시작이었다.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가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페스티벌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허위츠는 세계 최초로 피아노 트럼펫 드럼 베이스 색소폰 기타 트롬본 연주자 7인과 국내 71인조 디토 오케스트라를 모두 갖추고 영화 속 오리지널 사운드를 무대 위에서 구현했다. 흰 정장 상의에 검은색 나비넥타이까지 맨 허위츠는 공연 중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은 또 다른 영화 ‘위플래쉬’는 사실 미국에서 인디영화에 속할 만큼 소규모의 영화”라며 “멋진 취향을 지닌 한국 관객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고 방한 소감을 전했다. 허위츠는 라라랜드와 위플래쉬뿐 아니라 영화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의 음악도 맡았다.

재즈는 순간의 감정에 가장 충실한 음악이라던가. 영화음악은 기본적으로 녹음 음악이다. 영화 속 녹음된 음악을 듣던 관객들은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재즈를 눈앞에서 맞닥뜨렸다. 극의 인물과 스토리에 집중하다보니 듣기 어려웠던 악기 제각각 소리도 모두 들렸다. 특히 후반부, 영화와 공연의 절정이 맞물리면서 관객들은 환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영화가 엔딩 크레딧 장면과 함께 끝나자 폭죽이 연신 터지며 페스티벌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후 4시30분부터 150분가량 진행된 허위츠와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가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페스티벌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에서 건반을 연주하고 있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라라랜드 인 콘서트’로 달아오른 분위기는 페스티벌의 다음 프로그램인 ‘한스 짐머의 라이브’가 이었다.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는 직접 선별한 19인조 밴드를 진두지휘하며 과거 작업했던 영화 ‘라이언 킹’ ‘다빈치코드’ ‘캐리비안의 해적’ 글래디에이터’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인셉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등 17편 속 인기곡을 선사했다. 아시아 최초 공연에 나선 짐머는 반팔을 입은 채로 피아노와 기타 등을 직접 연주하면서 진행까지 도맡았다. 할리우드가 짐머의 음악을 그토록 사랑한 이유를 열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중국계 미국인 첼리스트 티나 궈가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페스티벌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에서 전자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웅장한 사운드뿐 아니라 화려한 볼거리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중국계 미국인 첼리스트 티나 궈는 전자 첼로와 사랑을 나누듯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현란한 연주를 보여줬다. 짐머는 공연 중 “멕시코에서 온 팬”이라고 소개한 남성을 무대로 불러내 이벤트를 했다. 통역을 세워 남성이 여자 친구에게 청혼하는 과정을 중계하고 환호와 박수를 이끌었다. 짐머는 곡마다 주요 연주자를 특별한 방식으로 소개했다.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진 공간 아래서 연주자 각각을 처음 만난 이야기 등 에피소드를 풀면서 여유를 뽐냈다.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오른쪽)가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페스티벌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에서 19인조 스튜디오 밴드와 협주하고 있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다크나이트 속 음악이 울려 퍼질 땐 배우 이병헌이 깜짝 등장해 짐머가 쓴 글을 대독했다. 무대 끄트머리에서 걸어 나오면서 읽어간 글엔 2008년 숨진 다크나이트 조커 역의 배우 히스 레저에 대한 추모와 미국 콜로라도주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에 대한 내용, 곡을 만들게 된 계기와 배경 등이 담겼다. 짐머는 “이병헌은 내 친구”라면서 뜻을 대신 전해준 데 고마운 마음을 공개적으로 표시했다. 짐머는 영어를 되도록 천천히 구사하며 관객들과 대화하거나 국내 배우와 통역을 대동하는 식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배우 이병헌이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페스티벌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의 무대에 서 있다. 뒤쪽은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 프라이빗커브 제공

권준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