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호텔 맡기고 “그냥 키워주세요”… 긴 추석연휴에 ‘동물 유기’ ↑

입력 2017-10-07 17:23
픽사베이

제주도에서 애견 호텔을 운영하는 김모(34·여)씨는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9일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말티즈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고 소개한 중년 남성은 “(반려견을)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게 됐다”며 “호텔에서 대신 키워 달라”고 다짜고짜 요구했다. 남성은 호텔 사정상 그럴 수 없다는 김씨의 설명을 반복해서 듣고 난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

김씨는 7일 “연휴나 휴가철이 되면 키우던 반려동물을 유기하려는 사람들이 급증한다”며 “이미 우리 호텔에도 주인이 맡겨놓고 찾아가지 않은 개가 20마리 넘게 있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길었던 올 추석 연휴가 끝나가는 가운데 유기동물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최장 열흘의 연휴 덕분에 여행을 떠나는 등 집을 오래 비우는 경우가 늘어난 탓이다. 휴가지에 반려동물을 두고 오거나 애견 호텔 등에 맡긴 뒤 찾아오지 않기도 한다. 올해 8살 된 반려견을 키우는 박모(25·여)씨는 “여행을 가는 등 집을 오래 비우게 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선택지가 별로 없긴 하다”면서 “애견호텔 비용이 부담되고 주위에 딱히 맡길 사람이 없으면 유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원래 반려동물이 가장 많이 유기되는 시기는 여름 휴가철이다. 유기동물 실시간 통계 사이트 ‘포인핸드’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구조된 유기동물 8만8636마리 중 39.7%에 해당하는 3만5256마리가 여름 휴가철인 5~8월에 유기됐다.

올해는 추석 연휴에 이런 현상이 반복됐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6일까지 모두 595마리의 유기동물이 구조됐지만 관계자들은 실제로 유기된 동물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 신고 되지 않은 유기동물도 있기 때문이다. 3년째 애견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이번에도 연락 안 되는 주인이 꽤 많았다”며 “지금은 너무 바빠서 일단 데리고 있을 생각이고 나중에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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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일부 반려동물 숙박업소에서는 나름의 대비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경남 거제시에서 반려견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모(24·여)씨는 연휴를 앞두고 새로운 형태의 계약서를 준비했다. 이 계약서에는 ‘정해진 투숙기간이 지난 후에도 반려견을 찾아가지 않을 경우 임의로 처리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조씨는 “그런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접하다 보니 우리 게스트하우스에서도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연휴나 휴가철마다 반복되는 문제에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동물보호단체 케어 임영기 사무국장은 “반려동물 숫자가 늘어나면서 유기나 학대도 증가하고 있다”며 “성숙한 시민의식도 중요하지만 펫시터나 처벌 강화 등의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