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고마 죽으면 좋겠어” 90세 한두이 할머니의 일상

입력 2017-10-07 16:02
SBS스페셜=도마마을 입구

죽음은 과연 아름다운 기다림이 될 수 있을까.

SBS 다큐 프로그램 ‘SBS스페셜’ 491회 ‘도마일기 2 - 꽃다운 날들' 편은 이제 끝을 바라보는 한 노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복사꽃이 만발하던 경남 함양 마천면 도마마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그 마을에서 늙어가는 여인이 있다. 도마마을의 최고령자인 90세 한두이씨가 그 주인공이다.
SBS스페셜=바느질하는 한두이 씨

지리산 자락에서 밭일하던 젊은 날은 갔다. 한 걸음 떼기도 숨이 차는 그녀에겐, 이제 반 평짜리 마루가 세상의 전부다. “사람들 막 고사리 끊으러 가재. 막 밭에 가재. 나 여기 앉아서 사람들 쳐다보고 있는 거 보면 욕할까 싶어서. 사람들이 보면 나는 방으로 들어가.” 그녀는 도마마을 가운데에 자리한 초록 대문 집에 산다.

그녀는 늘 마루에 앉아 사람들이 오가고, 낮과 밤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녀의 하루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녀가 이토록 간절히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거동이 불편한 두이 씨를 위해, 그녀의 세 딸들이 병간호를 위해 두이 씨의 집에 돌아가면서 머문다. 세 딸 중 두이를 가장 살뜰히 보살피는 건 첫째 딸인 엄계순(70) 씨다.
SBS스페셜=한두이씨와 그 딸

어렸을 때와 뒤바뀐 부모와 자식 사이, 어린 딸은 자라서 늙은 엄마의 보호자가 됐다. 미묘한 신경전이 이어지던 어느 여름날, 된장독이 터져버렸다. 된장이 잘못될까 애가 타는 엄마 두이 씨와, 노모 대신 갖은 노동을 하느라 지친 딸 계순 씨 사이에서 깨진 된장독을 둘러싼 모녀간의 긴장감이 고조된다.

두이 씨는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일곱 자식을 먹이려 밭일을 하다, 손가락 한 마디가 잘리는 고통을 참아냈다. 그녀는 어린 자식이 아프면, 겁도 없이 호랑이가 나오는 산길을 홀로 넘어 약을 구해오기도 했다. 자식들도 이런 엄마의 고생을 충분히 안다. 자식들이 벌초를 위해 오랜만에 두이 씨의 집으로 모였다.
SBS스페셜=도마마을 한두이 씨 집 앞에 온 고양이

늙은 엄마를 병간호하느라 고생하는 자식들을 보는 두이 씨의 마음은 편치 않다. 자신의 건강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자식들에게 미안해지니,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가 두이 씨의 말버릇이 됐다. 그녀를 찾아오는 동년배 동네친구들과의 대화 속 주요 화제는 바로 ‘죽음’이다.

끝을 기다리는 한두이 씨, 그녀에겐 볼 때마다 늘 한숨을 쉬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음에 영 차지 않는 자신의 영정 사진이다. 먼 곳으로 가는 길,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두이 씨는 영정사진을 다시 찍으려 한다. “이제 나는 고마 죽으면 좋겠어. 아무 소원도 없고 죽어서 하늘로 가고 싶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 ‘SBS스페셜 도마일기 2 - 꽃다운 날들'. 도마에서 태어나 이젠 마지막을 기다리는 한 여인, 한두이 씨의 일기를 통해 ‘부모 그리고 나의 세월’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나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긴 추석 연휴를 잔잔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방송이다. 8일 밤 11시5분 방송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