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 작동 안 된다”는 추석 119 전화… “소방관은 AS기사 아냐”

입력 2017-10-06 15:56 수정 2017-10-06 16:00
뉴시스

황금 연휴 기간. 소방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119 종합 상황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현직 소방관이 명절 연휴 엿새째인 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저는 소방관입니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답답하고 씁쓸한 마음을 짧게 나마 하소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119는 부른다고 무조건 가야 하는 머슴이 아닙니다”라며 운을 뗐습니다. 이 소방관은 이번 연휴, 어떤 고충을 겪고 있을까요.

그는 소방관으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소방관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저희는 관련 법에 근거하여 출동할 수 있습니다”라며 추석 연휴 겪었던 ‘민폐 신고 전화’를 설명했습니다.

황금연휴 기간엔 평소보다 곱절 많은 신고전화가 접수된다고 합니다. 소방 본연의 임무인 화제, 구조, 구급출동부터 당직 약국, 병원 안내 및 응급처치 안내까지 다양한 전화가 접수됩니다. 이 같은 “당연한 업무”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습니다. 긴급한 상황에 출동을 하고 시민들이 “감사합니다” “수고하십니다”라며 격려의 말을 건넬 때에는 미소를 짓게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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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소방관은 “일부 국민들은 우리 119를 소위 국민의 머슴이라 생각하시는 거 같습니다”고 말합니다. 어떤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호소했을까요. 소방관이 이달 4일 받은 신고 전화 중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어보겠습니다.

#1. 휴대폰을 산에서 잃어버렸다. 상당히 중요한 문서가 저장돼 있으니 찾아줘라.

#2. 다리가 아프다. 집까지 데려다줘라.

#3. 김치냉장고 작동이 잘 안되는데 와서 봐줘라. 나 세금 꼬박꼬박 내고 국민이 필요해서 부르는데 와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

무려 4일 하루 동안 받은 전화 내용입니다. 사연을 공개한 소방관은 “여러분 저희는 개인 비서도 아니고, 택시나 버스처럼 여러분을 목적지에 모셔다 드리는 일도 하고 있지 않으며 가전제품을 점검하는 AS 기사도 아닙니다”하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저 “관련 법에 따라 못 갑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고 털어내고 싶지만 그조차 마음이 쓰인다고 합니다. “아…우리가 도와주지 못해서 더 큰 사고가 나는 건 아닌지…”하며 마음 한켠이 편치 않습니다. 단순 민원까지 도와줄 수 있는 여건은 되지 못해 거절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죠.

실제로 이런 단순 출동으로 관할 소방력이 투입돼서 그 관할에 분초를 다투는 긴급 출동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때는 가장 가까운 인근 소방력을 투입해 처리하지만 인근 소방력이 도착할 때까지 상황실에서는 발을 동동 굴리며 초조해할 뿐입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119를 불러본 저도 긴급한 상황에서는 1분 1초가 1시간 같이 느껴졌습니다.”

소방관은 거듭 부탁했습니다. “119 신고전화는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 신고를 하는 긴급전화입니다. 신고 시 다시 한 번 생각하여 주시고 취지에 맞다면 신고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한다면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