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63)는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s·1989·포스터)’의 원작자다. ‘남아있는 나날’은 영국 귀족의 장원을 전 세계 전부로 알고 살아온 한 남자 스티븐스(앤소니 홉킨스) 시선을 통해 1930년대 가치관이 붕괴되던 영국의 격동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달링톤홀에서 집사로 일하는 스티븐스(Stevens)는 달링턴경이 전쟁 동안 나치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달링턴경이 매우 훌륭한 인품을 가졌다고 생각해온 스티븐스는 자신이 기억하는 고용주와 그의 어두운 과거 사이의 괴리에 괴로워한다. 56년 미국 사업가가 달링턴 홀의 새 주인이 된 뒤 스티븐스는 휴가를 얻는다.
그가 예전 가정부인 켄튼(에마 톰슨)을 만나기 위해서 자동차로 여행한다. 스티븐스의 회상을 따라 과거를 더듬어간다. 결국 그의 기억이 임의적이고 부분적이며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시구로는 ‘남아있는 나날’에서 정교하고 명료한 장치 속에서 기억의 왜곡과 역설을 보여준다. 그는 이 작품으로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큰 명성을 얻는다.
‘남아있는 나날’은 이시구로의 데뷔작 ‘창백한 언덕 풍경(A Pale View of Hills·1982)’과 두 번째 작품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An Artist of Floating World·1986)’의 주제의식을 잇고 있었다. 첫 작품은 전쟁 후 일본의 황량한 풍경을 투명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담고있고 두 번째 작품은 전쟁 중 선전 예술에 휘말린 화가의 행동과 책임에 대해 묻는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 측은 “이시구로는 초기작에서 이미 가장 깊이 다루는 주제 ‘기억, 시간, 자기 기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의 글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조심스럽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평가했다. 이시구로는 인간과 문명 미래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아왔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The Unconsoled·1995)’, ‘우리가 고아였을 때(When we were orphans·2000)’에 이어 문제작 ‘절대 날 떠나지 마(Never Let Me Go·2005)’ 그리고 최신작 ‘녹턴(Nocturnes·2009)’까지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 낸 작품들이다.
특히 ‘절대 날 떠나지 마’는 90년대 후반 영국,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기숙학교 ‘헤일셤’을 졸업한 후 간병사로 일하는 캐시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되어 온 클론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최신작 ‘파묻힌 거인(The Buried Giant·2015)'은 아들과 재회를 희망하며 여행하는 노부부 이야기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이시구로는 다섯 살 때 영국국립해양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 켄트대와 이스트앵글리아대에서 공부한 뒤 런던에서 활동 중이다. 일찍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작가다. 첫 소설로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받았고 두 번째 소설로 휘트브레드상 등을 받았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과 ‘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부커상 후보작에 올랐다. 이시구로는 평단과 독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왔다. 주목받는 현대 영미권 작가의 한 사람이었다.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95년 대영제국 훈장을, 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았다. 국내에는 ‘남아있는 나날’(민음사) 등 다수가 번역돼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