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29)씨는 지난달 28일부터 유럽 여행을 하고 있다. 회사에는 “급성 장염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28~29일 이틀 연차를 냈다. 친구 2명과 함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둘러 볼 계획이다. 나라마다 반드시 가야 할 ‘맛집’도 찾아 놨다. 김씨는 여름휴가도 아닌 추석 연휴 때 유럽 여행을 하고 있단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많은 직장인들은 본의 아니게 회사에 거짓말을 했다. 최장 열흘에 걸친 ‘황금연휴’에 연차를 더하기 위해서다. 평소 시간 때문에 어려운 유럽 여행도 이번 추석 전후로 연차를 붙인다면 가능하다. 김씨는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간다고 말하면 (연차를) 못 쓸 것 같아 거짓말을 했다”며 “살면서 이런 연휴는 두 번 다신 없을 거란 생각에 그랬다”고 말했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 지난달 19일 직장인 11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2명 중 1명은 “거짓말을 하고 연차를 쓴다”고 답했다. 직장인들이 연차를 쓰기 위해 거짓말이나 핑계를 댄 이유는 ‘솔직하게 말하면 못 쉴 것 같아서’(56.6%, 복수응답)였다.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겼다’(47.2%), ‘진료 예약이 있다’(23.4%), ‘가족, 친지의 경조사가 있다’(17.4%)가 뒤를 이었다.
대기업 건설사에 다니는 이모(31)씨도 지난달 29일 연차를 냈다.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가서 쉬고 싶어서다. “왜 연차를 내냐”고 묻는 직장 상사에게 이씨는 “미국에서 작은 할아버지가 오시는데 공항에 마중 갈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사실 이날 작은 할아버지 마중은 이씨가 아닌 이씨 아버지가 몫이었다. 이씨는 “(상사가) 거짓말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 인사팀도 이런 사실을 안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평소 연차를 잘 안 쓰던 (저연차) 직원들이 이번 추석 연휴에는 많이 쓴 것 같다”며 “그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거짓말까지 하며 연차를 쓴 사실이 회사 입장에선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열흘이나 쉬는데 굳이 연차까지 붙여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자유롭게 연차를 사용하는 문화가 정착이 안 돼 답답하단 목소리도 있었다. 또 다른 기업 인사담당자는 “이번 연휴 때 연차를 쓰라고 직원들에게 공지했는데 사용한 직원이 많지 않았다”며 “(연차를 쓸 때) 상사 눈치를 보는 문화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