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홈런왕'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현역 은퇴를 하루 앞둔 '최다 홈런왕' 삼성 이승엽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전 감독의 활약을 보면서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키운 이승엽은 경북고를 졸업한 뒤 1995년 삼성에 입단해 이만수 전 감독과 3년간 함께 뛰었다. 다음은 이만수 전 감독의 편지 원문.
이승엽선수가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할 때가 1995년이었다. 그 당시 나도 어느덧 최고참이었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승엽선수에 대해 솔직히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입단하고 다음 해에 스프링캠프 가는데 신인인 이승엽 선수도 당당하게 캠프에 참가했다. 이때만 해도 갓 성인이 된 나이였기 때문에 이승엽 선수가 잘하면 얼마나 잘 하겠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같이 훈련에 들어갔는데 이승엽 선수의 타격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수가 이렇게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는지? 게다가 기존의 한국선수들이 갖고 있는 타법이 아닌 전형적인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타격하는 타법으로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어린 선수가 저런 타격폼을 갖고 있는지? 부러웠다, 내가 이승엽선수에 대해 인터뷰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비록 어린선수지만 이승엽 선수가 타격연습 할 때는 멀리서 이승엽 선수를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모든 훈련이 다 끝나면 집에 돌아가서 이승엽선수가 타격했던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곤 했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이승엽 선수의 최대 장점이라고 하면 맞고 나서 앞으로 끌고 가는 힘이 좋아 다른 어느 선수들보다 타점이 길다는 것이다. 이런 타격을 하는 선수가 장효조 선수와 양준혁 선수다.거기에 비해 나의 타격은 당겨 치는 타법을 구사했기 때문에 맞고 나서 끌고 나가는 거리가 이들 선수들보다 훨씬 짧은 편이었다. 아무리 이승엽 선수처럼 앞으로 많이 끌고 가는 타법을 하려고 해도 당겨 치는 타법으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승엽 선수의 또 한가지 장점이라면 타격 못지 않은 부드러운 수비였다. 어린선수가 1루에 나가면 아무리 강한 타구나 어려운 타구가 날아와도 부드럽게 잡아내는 동작이 일품이었다. 좋은 운동신경을 타고 나기도 했지만 거기에 못지 않게 엄청난 연습 벌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더라도 연습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오늘의 이승엽은 없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젊은 선수들 못지 않게 꾸준한 노력과 자기 관리 거기다가 이승엽선수의 겸손한 태도는 야구인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자기만의 높은 목표가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야구인 선배로서 이승엽 선수가 일본이 아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야구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해 보았다. 물론 이승엽 선수가 일본에서도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했지만 좀더 큰 무대에서 야구했더라면 일본과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선수가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은 이승엽 선수가 한국프로야구 현역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심정수 선수와 함께 미국메이저리그 캠프에 합류해서 연습하고 게임에 출전한 선수다. 그 당시 나는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에 있었다. 화이트 삭스팀은 애리조나 투산에서 캠프를 할 때고 이승엽 선수가 있는 곳은 시카고 컵스 팀이 홈 그라운드로 사용하는 애리조나 피닉스였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이 애리조나 투산에서 피닉스까지 원정경기가 있어 자동차로 한 시간 30분 올라가 경기했다. 먼저 시카고 컵스 팀이 훈련하는 도중에 이승엽 선수를 만나 서로 인사를 하고 메이저리그 생활과 야구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이때의 이승엽 선수는 현역 한국인으로써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합류해서 연습과 경기를 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을지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었다.
삭스팀 아지기옌 감독은 이승엽 선수의 훈련하는 모습과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에게 오더니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승엽 선수를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으로 데리고 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너무 매력적이고 좋은 타격을 한다며 감탄했다. 아지기옌 감독은 서양인 선수들보다 동양인 선수들을 선호했던 지도자들 중에서 한 명이었다. 동양인들은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다는 것을 많은 동양인들을 만나서 이미 알고 있다며 어떻게 해서라도 이승엽 선수를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이승엽 선수는 메이저리그 지도자들의 눈에도 들었다. 내 생각에도 이승엽 선수가 미국메이저리그에서 선수생활 했다면 이치로 선수처럼 성공한 야구인이 되었을거라 믿는다. 그 이유는 이미 여러 장면에서 증명이 되었다. 처음 미국메이저리그에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투수들을 상대해서 잘 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계대회에서도 이승엽 선수의 화려한 타격을 증명한 것도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국내 메이저리그급 투수들을 상대로 전혀 손색이 없는 타격을 한 것을 보더라도 이승엽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면 이치로처럼 성공하는 타자가 되었으리라.
미국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일본인 타자들을 꼽는다면 이치로 선수 그리고 마쓰이 선수를 들 수 있다. 이승엽 선수는 중장거리 타격하는 마쓰이 선수 보다 더 좋은 타격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치로 선수는 전형적인 단타위주의 스마트한 타자였다면 이승엽 선수는 이치로와 다른 중장거리 타자로 미국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실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또 한가지는 세밀한 야구를 하는 일본야구보다 힘으로 정면 대결하는 미국에서 야구했더라면 훨씬 더 좋은 성적을 올렸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미국야구는 도망가는 야구는 잘하지 않고 거의 정면승부 하는 스타일이다. 미국야구는 힘으로 대결하는 나라라면 일본야구는 정면 승부하는 것보다 약점을 파고들면서 야구하는 스타일이다.
지금도 많이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이승엽 선수가 일본이 아닌 미국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훨씬 더 많은 타자들이 미국으로 진출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내일이면 정들었던 선수생활도 다 접고 떠나야 한다.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접는 것만큼 야구인으로서 힘들고 어려운 일은 없다. 그러나 선수생활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저력이 선수 이후의 인생 2막에서 분명히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 앞으로 그의 행보를 지켜 보는 일이 선배로서 흐뭇하고 기대가 되고 그 동안의 수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