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틸러슨의 '디커플링'… 압박-대화 '두 목소리' 왜?

입력 2017-10-02 09:24

'디커플링(Decoupling)'은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북 외교 노선이 차이를 보일 때 사용하곤 했던 표현이다. 원래는 모건스탠리가 처음 만들어낸 경제용어였다. 세계 경기는 침체인데 특정 국가만 호황인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동조화(coupling)'의 반대 개념으로 '탈동조화(decoupling)'란 말을 썼다. 이 용어는 역대 한·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설명할 때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동맹관계인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대하는 문제에서 공동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런데  북한에 강경한 보수정권이 미국에 들어서면 한국에는 대화를 추진하는 진보정권이 등장하고, 한국의 보수정권이 제재와 압박을 밀어붙이려 할 때 미국은 진보정권이 선출되는 미묘한 '불일치'가 수십년째 지속돼 왔다. 

햇볕정책을 앞세운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하며 대화 기조를 이어갈 때 미국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정부가 8년간 집권했다. 한국의 대북 노선은 햇볕정책인데,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외교 부문에서 그리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어야 했다. 

햇볕정책을 '퍼주기'라고 비판하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이 8년간 유지됐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강경한 대북 정책을 잇따라 채택하는 동안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 개념을 고안해 어정쩡한 기조로 북한을 대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과 한국 정권이 나란히 교체됐다. 다시 정반대로 미국엔 보수정권이, 한국엔 진보정권이 등장했다. 대북 정책 '불일치'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커졌다. 문재인정부는 대화를 통한 평화를 말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며 군사 행동을 스스럼 없이 언급하고 있다.


◇ 한·미 정부의 '디커플링'… 美 대통령-국무장관의 '불일치'로 전이


전문가들은 한·미 정부의 이런 디커플링이 없었다면 북한 이슈가 지금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런데, 역대 양국 정부가 보였던 대북 정책 기조의 차이가 지금 미국 정부 안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것도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플레이어인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통해서다. 

미국 대통령과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을 놓고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놓는 상황은 북핵 긴장이 고조된 5월 이후 수없이 반복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내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이를 주워담으며 대화 가능성을 내비치고, 틸러슨의 외교적 해법이 언론에 주요 기사로 등장하면 "그게 아니라…" 하듯 트럼프가 강경한 트윗을 쏟아내곤 했다. 

트럼프와 틸러슨의 대북 정책 '디커플링'은 2일 정점을 찍었다. 중국을 방문한 틸러슨 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2~3개 직접 대화 채널을 열어놓고 있다"며 "그들에게 '대화하고 싶은가'라고 묻고 있다. 그들과 대화할 수 있고, 또 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북한과 막후에서 직접 소통하고 있음을 공개한 건 처음이었다. 

그러자 불과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쏟아냈다. 그는 트위터에 "틸러슨 장관에게 '리틀 로켓맨'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해줬다"고 썼다. '리틀 로켓맨'은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붙인 별명이다. 트럼프는 "렉스, 기운을 아껴라.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덧붙이며 "로켓맨을 잘 대해주는 것이 25년간 효과가 없었는데, 지금이라고 왜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이 북한과 협상할 시기라고 믿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워싱턴과 평양 사이에 있는 외교 채널의 초점은 북한에 구금된 미국인들의 송환을 보장하는 데 맞춰져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하려는 틸러슨의 노력을 깎아내린 듯하다"고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 트럼프-틸러슨, '투 트랙' 전략? 그냥 생각이 다를 뿐?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달 유엔총회에 연설은 북한에 초점이 맞춰졌다. 트럼프는 "로켓맨" "완전 파괴" 등의 '비외교적' 거친 표현을 동원해 북한을 공격했다. 자신이 직접 연설원고를 수정하며 첨가한 단어들이라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당시 현장에서 연설을 듣고 있던 틸러슨의 표정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틸러슨 장관은 트럼프의 강경 발언이 잇따르자 고개를 떨구거나 가로저으며 난감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미 언론은 그의 표정을 포착해 전하며 "트럼프의 연설을 듣는 틸러슨의 행동이 미국 외교 정책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식적인 창구보다 개인적인 트윗을 통해 정책을 언급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과 외교 분야에서 정제된 목소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틸러슨 장관의 역할이 미국 정부 내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의 디커플링은 1차적 원인제공자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돌출적인 발언과 행동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동력 중 하나였고, 대통령에 취임해서도 이를 버리지 않았으며,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에서까지 표출되고 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정치인'과 '외교관'의 언어가 트럼프의 직설적 언어습관 탓에 더욱 증폭돼 번번이 틸러슨 장관과의 불일치 현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미묘한 균형'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대북 강경 기조를 거침 없이 표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수위를 외교관인 틸러슨 장관이 대화와 협상 카드로 누그러뜨리고, 틸러슨의 언어를 북한이 오독하지 않도록 트럼프가 제어하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벼랑 끝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를 상대하는 미국으로선 대화와 압박 사이에서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줄타기'가 필요하다. 트럼프와 틸러슨의 디커플링이 그 줄타기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