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극단적 선택했다 홀로 생존한 70대, 36년만에 병원 찾아 '마음의 빚' 갚아

입력 2017-09-29 18:18
36년 전, 삶을 비관해 딸과 극단적 선택을 했다가 홀로 생존했던 70대 할머니가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찾아가 반평생 마음에 담아온 빚을 갚았다.

 지난 28일 전북에 사는 A씨(75)가 전주 예수병원을 찾아 꼬깃꼬깃한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A씨는 “수십 년 전 미처 내지 못한 치료비였다”고 말하고 한 많았던 삶을 털어놓았다.

 A씨가 39세 였던 1981년 11월. 남편과 헤어진 뒤 생활고에 겪던 그는 모진 마음을 먹고 딸(당시 10세)과 함께 죽으려고 방안에 연탄불을 피웠다.

 이들은 이튿날 이웃에게 발견돼 전주 예수병원으로 실려 왔다. 응급 처치했지만 딸은 안타깝게 숨을 거뒀고 A씨만 목숨을 건졌다. 이후 두 달간 치료를 받다가 전주교도소에서 1년 6개월간 실형을 살았다.

 출소 후 A씨는 전세금 30만원을 빼서 치료비를 내려고 했으나 주인이 이를 거부했다. 힘들게 농사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오다 재혼했지만 남편과는 10년 전 사별했다.

 이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아오던 중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신체 여러 곳을 다치는 큰 사고였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은 사고 보상금을 손에 쥐자, 큰 결심을 하고 병원을 찾았다.

 “그동안 사는 게 너무너무 팍팍 했어요. 큰돈은 아니지만 죽기 전에 마음의 빚을 꼭 갚고 싶었습니다.”

 A씨는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며 “치료 금액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다만 얼마라도 갚고 싶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이 돈을 불우환자를 위해 쓰기로 했다. 또 건강이 안 좋은 A씨에겐 무료 종합건강검진과 치료를 약속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