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낀 '아줌마 아나운서'가 나오는 요즘 KBS뉴스

입력 2017-10-02 09:00


“웬 아줌마가 저기에?”

4일 아침 KBS ‘뉴스광장’을 보던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다. 불과 사흘 전까지 박상범 앵커와 함께 뉴스 진행을 하던 김나나 앵커가 사라지고 안경을 낀 중년 여성이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저 아줌마는 누구길래 진행을 저렇게 잘 하지?”

뉴스를 보던 시청자들의 반응은 곧바로 바뀌었다. 여성 앵커는 또렷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진행을 해나갔다.

시청자의 시선을 잡은 중년 여성은 유애리 아나운서다. 1958년생으로, 1981년 KBS 공채 8기로 입사해 3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이다. 작년까지 KBS 편성본부 아나운서 실장으로 근무했다. 만 59세인 부장급 인사가 뉴스 진행을 맡는 것이 이례적이다. KBS 총파업으로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전국언론노조 KBS와 MBC 본부 조합원들은 4일 0시를 기점으로 현재까지 총파업을 하고 있다. 유애리 아나운서는 파업을 시작한 날부터 시청자를 만났다.

지금까지 여성 아나운서는 공공연하게 ‘예뻐야 하는’ 직업군에 속했다.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 의상이 완벽히 준비된 모습은 기본이다. 여기에 젊음까지 더해져야 했다.
사진=Jtbc 5시 정치부 회의 캡처

'노메이크컵'이나 안경, 편안한 복장은 여자 아나운서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여자 아나운서가 안경을 끼고 뉴스 진행을 한 사례도 있지만 이 역시 미모로 평가됐다. JTBC에서 ‘5시 정치부 회의’에서 ‘강지영의 Talk쏘는 정치’를 진행하는 강지영 아나운서는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했다.

대중은 강지영 아나운서에게 '안경 여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안경을 쓰고도 여신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써도 괜찮다는 게 아니었다. 안경을 쓰고도 예뻐야 한다는 외모지상주의가 발동한 것뿐이다.

그러나 유애리 앵커가 보여준 모습은 이와 정반대여서 신선하다. 아나운서의 이미지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안겨줬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나이가 많고 도수 높은 안경을 끼며, 다소 통통한 여성 아나운서도 뉴스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애리 앵커는 후배들의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뉴스 진행을 계속할 것이다. 사측의 불가피한 선택의 씁쓸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 여성 아나운서가 브라운관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비출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소득이다.

우승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