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김없이 불살랐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배우 조진웅(41)이 영화 ‘대장 김창수’(감독 이원태)에서 보여준 혼신의 연기 말이다. 비운의 역사에 맞서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진 청년 김창수를 연기하면서 조진웅은 온전히 그 인물이 되어 그의 진심을 전달했다.
‘대장 김창수’는 1896년 명성황후 시해범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은 청년 김창수가 인천 감옥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며 조선인들의 대장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혹자에게는 김창수라는 이름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의 본명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김구’가 아니라 ‘김창수’라는 숨겨진 이름을 타이틀로 내세운 이유는 감독의 명확한 의도 때문이었다. 이원태 감독은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건져 올린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를 통해 관객들이 위안과 희망을 얻길 바랐다”고 했다.
1896년 일본인 살해 혐의로 재판장에 선 김창수는 재판장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았을 뿐”이라 소리치지만 결국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렇게 시작된 625일간의 인천 감옥소 수감 생활. 일본 편에 선 감옥소장 강형식(송승헌)은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김창수를 갖은 고문으로 괴롭히고 죄수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리고 만다.
김구 선생의 청년기를 다룬 영화의 타이틀롤을 맡기까지는 적잖은 고민이 뒤따랐다. 27일 서울 동대문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진웅은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김구 선생 이야기라고 해서 ‘난 못 하겠다’고 고사했는데 한참 뒤 시나리오를 다시 보니 청년의 이야기더라.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창수라는 인물에 녹아드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그는 “많이 어려웠다. 내가 뭘 한들 실존 인물의 1000만 분의 1도 따라갈 수 없다. 그저 현장에 젖어 드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청년 김창수가 겪은 일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라. 겁이 났고, 그런 내 자신이 창피했다”고 털어놨다.
작품이 주는 무게감과 역사적인 위인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러나 조진웅은 보란 듯이 그 고난의 과정을 이겨냈다. 극 중 인물이 현실에 눈을 뜨고 서서히 변화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그는 매 순간 가장 적절한 감정선을 찾아냈다.
쉽사리 폭발시키기보다 삼키고 절제하는 표현력이 돋보였다. 끓어오르는 내면의 무언가는 그의 이글대는 눈빛을 통해 전해졌다. 특히 사형장 집행 장면에서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인생 연기’를 보여줬다. 비통한 현실에 오열하다가도 이내 자신을 다잡는 그의 단단한 두 눈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밀려온다.
“(조)진웅씨는 촬영을 시작한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정말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그 날 찍는 신에 몰입된 채로 촬영장에 와서 끝까지 유지해야 했죠. 어떤 날은 굉장히 슬픈 신을 찍어야 하는데 평소보다 우스갯소리를 많이 하더라고요. 혼자 감정 수위 조절을 계속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으니.”(이원태 감독)
“앞으로 실존인물을 그린 영화는 안 하려 한다”는 너스레로 운을 뗀 조진웅은 “재연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실제로는 그 고생을 어떻게 견디셨을까란 생각밖에 안 들더라. 그들이 지켜내신 이 나라에서 떳떳하게 ‘배우 짓’을 하며 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이 이야기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기에 잘 견뎌낸 것 같다”고 했다.
‘대장 김창수’는 곧 조진웅이었고, 그의 묵직한 진심은 이 작품을 더 뜨겁게 만들었다. 10월 19일 개봉.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